1만원짜리 연극 논란… “관객 몰려 대중화에 기여” vs “작품 질 떨어뜨리는 독약”

입력 2011-03-20 17:20


‘1만원짜리 연극’들이 눈에 띄게 늘면서 공연계가 술렁이고 있다. 정상가의 절반 이하까지 할인된 티켓들이 넘쳐나고 있고, 심지어는 정상가가 1만원인 연극까지도 등장했다. ‘싼값’을 무기로 흥행 몰이에 성공한 제작사들은 저가 연극이 소비자의 심리적인 저항선을 무너뜨려, 연극의 대중화에 기여한다고 주장하지만 일각에서는 저가 연극은 장기적으로는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독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7일 연극 ‘드라마 만들기’가 공연 중인 서울 혜화동의 한 소극장을 찾았다. 평일 오후 8시 공연인데도 빈 좌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흥행의 원동력은 가격이다. 정가는 3만원이지만, 인터넷 예매를 하면 평일 전 공연은 9000원, 주말은 1만5000원을 받는다. 연극은 80∼90%가 인터넷으로 예매하기 때문에, 대다수 관객들이 1만원 이하로 공연을 보는 셈이다.

관객 이민정(31·여)씨는 “가격이 내려가면서 올해만 ‘콘보이쇼’ ‘로미오와 줄리엣’ 등 5편이 넘는 연극을 봤다. 이전에는 연극이 생소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연극도 영화 보는 것처럼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인터파크 예매율 순위는 저가 연극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주말 일부와 평일 공연을 1만원에 팔고 있는 ‘보잉보잉’은 주간 예매율 1위, ‘옥탑방 고양이’는 3위에 올라 있다.

소셜커머스 사이트의 등장은 연극의 가격하락을 더욱 부추긴다. 지난해부터 활성화된 소셜커머스는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공동 구매자를 모집하고 정해진 인원이 모이면 50% 넘는 할인율로 상품을 구매하는 전자 상거래다. 티켓몬스터(‘티몬’), 위메이크프라이스 등이 대표적인 소셜커머스 사이트다.

가을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6일 ‘티몬’을 통해 연극 ‘강풀의 순정만화’(정가 3만원)를 할인가 9800원에 내놨고, 하루 만에 총 3414장(34회분)을 팔아치웠다. 70% 넘게 할인한 ‘보잉보잉’(4800장), ‘금발이 너무해’(7000장), ‘옥탑방 고양이’(1400장) 등도 대량 판매됐다.

연극열전 관계자는 “얼마 전 소셜커머스 사이트로 ‘이웃집쌀통’이 7900원에 팔리는 것을 봤다. 정말 아무리 관객이 안 모여도 그렇지, ‘이건 아니다’ 싶었다. 객석을 비우고 가느니 그렇게라도 팔겠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정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저가 연극은 20∼30대 젊은층을 겨냥한 로맨틱 코미디물이 많다. 하지만 예술성을 겸비한 정극들 중에도 1만원 짜리 작품이 등장했다. 성남문화재단은 최근 ‘시리즈연극 滿員(만원)’을 내놨다. ‘라이어’(4월 7∼9일), ‘민들레 바람되어’(6월 10∼12일), ‘늙은 자전거’(10월 6∼8일) ‘꽃마차는 달려간다’(11월 10∼12일)는 전석이 1만원이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라이어’는 현재 전석이 매진됐고, ‘민들레 바람되어’는 60%정도 팔렸다.

성남아트센터 공연기획부 서경아 과장은 “2005년부터 연극을 유치했는데 관객이 너무 없어서 최근 2년간은 연극을 올리지 못했다. 지역 주민들의 문화생활을 지원하는 측면에서 손해를 감수하고 연극 가격을 대폭 낮췄다”고 토로했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지금이야 저가에 공연을 팔면 사람들이 보겠지만, 중장기적으로 그 관객들이 본래의 정가 공연들을 비싸다고 생각할 것이다. 가격 할인보다 공연 제작사의 세금 감면 등 제도적인 지원으로 연극 수익을 보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