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독교 성지 순례] 상록수 정신 이어온 ‘안산 어머니 교회’
입력 2011-03-20 17:44
(3) 상록수 최용신과 안산 샘골교회
서울지하철 4호선 상록수역(常綠樹驛)엔 상록수가 없다. 하지만 경기도 안산의 ‘어머니 교회’인 샘골교회에 가면 계절에 관계없이 항상 푸른 향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1번 출구를 나와 안산소방서 상록수 119안전센터 방향으로 10분 정도 은은한 향을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야트막한 동산이 나온다. 상록공원으로 샘골교회를 폭 껴안고 있는 모습이다. 공원 초입엔 심훈이 쓴 ‘상록수’의 주인공 채영신(실제 주인공 이름은 최용신) 선생이 두 팔을 벌리고 어린이를 반갑게 맞이하는 정겨운 동상이 첫눈에 들어온다. 최용신은 이 교회를 통해 농촌계몽 활동을 폈다. 여기가 바로 안산의 기독교 성지다.
못 다한 사랑 천국에서 다시 만나
상록수 공원에는 최용신의 묘와 그녀의 약혼자였던 고(故) 김학준 교수의 묘가 다정한 연인처럼 누워있다. 왼쪽 동그란 봉분이 최영신 묘이고 길쭉한 네모가 김 교수의 무덤이다. 그녀는 잘 알려진 대로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였다. 함경도 원산이 고향인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했지만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으니 10년 후에 결혼해서 함께 농촌을 위해 일하기로 약속했다. 그녀 나이 16세 때였다.
그러나 10년 후 두 사람은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각기병으로 최용신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 금석맹약을 어긴 그녀는 자신을 오래 기다려준 애인에게 ‘먼저 가서 너무 미안하다’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 이때 김 교수는 일본 도쿄대 법대에 재학 중이었다.
“내가 죽거든 최용신 옆에 묻어다오.” 조선대 법대 교수를 지낸 김 교수는 결국 사후에 약속을 지켰다. 1974년 64세의 일기로 별세한 그는 예전의 약혼녀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1년 뒤 두 사람은 마치 소설의 한 장면처럼 이 동산에서 다시 만나 서로의 소원을 이뤘다. 현재 이 묘역은 안산시 향토유적 제18호로 지정돼 있다.
최용신의 고귀한 생애는 사후에 더욱 빛났다. 35년에는 소설가 심훈이 그녀를 모델로 ‘상록수’를 발표해 세상에 알렸다. 37년에는 저명한 농학자였던 유달영이 ‘농촌 계몽의 선구, 최용신소전’을 썼다. 64년에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용신봉사상’을 제정해 오늘날까지 맥을 이어가고 있다. 마침내 정부는 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상록공원 주변은 복잡한 상가 거리와 고층 아파트로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일단 공원 안으로 들어서면 세상과는 전혀 다른 한적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날 수 있다. 전통적인 양식과 현대감각이 잘 어우러진 ‘최용신기념관’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샘골교회 100주년을 맞아 세워진 이 기념관은 연면적 545㎡(165평)에 한옥 형태의 단층 건물로 지하 1층과 지상으로 나뉜다.
전시관 안에는 예전의 천곡강습소의 모습과 풍경을 재현한 마을과 상록수의 초판본, 검은색 저고리(교복)와 성경책 등 그녀의 채취가 물씬 나는 유품들이 세월을 잊고 전시돼 있다.
기념관 오른쪽에 있는 샘골교회 앞뜰에는 70년대식 종탑이 그대로다. 그 앞쪽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향나무가 있다. 그 나무 아래엔 ‘ㄷ형’으로 돌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32년 10월 그녀가 이 마을에 세웠던 천곡강습소의 주춧돌로 쓰였던 돌이다. 당시엔 20개였으나 지금은 15개만이 남아 있다.
안산의 어머니 교회로 거듭나기
최용신이 생전에 그토록 애원했던 천곡강습소의 맥은 끊겼지만 샘골교회는 지금까지 의연히 살아남았다. 올 7월 3일이 창립 104주년으로 안산의 어머니 교회다. 초기의 교회 이름은 행정구역을 딴 사리(四里)였다. 29년 샘골로 불리다가 32년 10월부터 샘골이란 이름을 한자화한 천곡교회로 오랫동안 불렸다. 도시개발사업에 포함돼 교회가 쫓겨날 위기도 있었다. 그러다가 98년 교회 부지를 되찾고 새로 건축한 뒤 교회 이름을 지금의 샘골교회로 바꿨다.
샘골교회는 지금 새로운 1세기를 준비하고 있다. 2009년 부임한 진광호(42) 목사는 ‘새로운 100년 VISION 3000’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3000명이 예배드리는 교회, 젊어지는 교회, 지역 사회를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로 거듭나겠다는 10년 계획을 차근차근 실천해나가고 있다.
우선 행복과 평화가 넘치는 가정을 만들기 위해 예배를 가족이 다함께 드릴 수 있도록 유치부와 교회학교와 예배 시간을 오전 11시로 통일했다. 한 달에 5주가 있는 달 마지막 주일엔 다함께 모여 예배를 드린다. 지역 사회를 위해선 어머니배구대회와 안산시민배구대회를 봄, 가을에 개최하고 있다. 이 밖에 시민합창제, 노래자랑, 영화제 등 각종 문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을 위해 한글교실과 한국문화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내달 부활절이 끝나면 두 달간 대대적인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간다. 진 목사는 “샘골교회는 새로운 100년을 맞아 안산의 어머니 교회로 거듭나기 위해 초기교회 정신으로 돌아갔다”면서 “최용신 선생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기념교회로 발전하기 위해 1000여명의 성도들이 밤낮으로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산=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