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생존자들, 몸 흔들리는 느낌·어지럼증·구토… 당시 떠올리며 눈물

입력 2011-03-18 18:26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사람들이 작은 진동에도 불안해하거나 지진 상황을 떠올리며 감정 조절을 못하는 등 정신적 충격이 심각하다. 일부는 어지럼증, 구토, 고열, 불면증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TV에서 일본 지진 장면이 나오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를 지르는 어린 아이들도 있다.

주부 김희정(34)씨는 가족여행 중이던 지난 11일 일본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臺)에서 지진을 겪었다. 김씨 부부가 아들(2)을 데리고 탄 고속열차 신칸센은 도쿄로 출발한 지 2분 만에 멈췄다. 열차가 부서질 듯 흔들렸고 창밖 건물과 나무, 철탑은 태풍 속 갈대처럼 휘청댔다.

김씨 가족 등 승객 100여명은 5시간 동안 열차에 갇혀 구조대만 기다렸다. 이들이 대피한 센다이 시내 유도체육관은 소름이 돋도록 추웠다.

김씨 가족은 13일 철도회사에서 마련한 버스를 타고 센다이를 빠져나왔다. 도로는 동북지역을 탈출하는 차들로 들끓었다.

다음날 저녁 나리타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때까지 안도할 틈은 없었다. 김씨는 18일 “한국에 와서도 가슴이 두근거려 약을 먹었지만 효과가 없다”며 “한동안 땅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 같아 안정이 안 됐다. 지금도 버스는 진동 때문에 탈 엄두를 못 낸다”고 말했다. 김씨는 귀국 후 제대로 잠들지 못했고 식욕을 잃었다. 대피소에서 본 아기들과 임신부가 자주 떠오르고 텔레비전을 보다 멍하니 눈물을 흘린다. 늘 다니던 길이 낯설어 방향을 잃기도 했다. 3일 전까지는 상점에서 산 물건을 계산대에 두고 오길 반복했다. 김씨는 최근 보건소에서 심리 상담을 받았다.

센다이에서 살다 지난 15일 두 아이를 데리고 급히 귀국한 김인혜(34·여)씨 가족도 지진 후유증을 겪고 있다. 김씨는 “계속 지진이 일어나는 것처럼 흔들림과 어지럼증을 느낀다”며 “남편 직장 때문에 돌아갈 생각을 하면 배가 아프다”고 했다. 김씨의 두 아이는 귀국 직후 고열과 구토 증세를 보였다. 첫째 딸(3)은 텔레비전에서 지진 장면이 나오면 전원을 끄라며 소리를 지른다고 김씨는 전했다.

센다이에서 돌아와 어머니 집에 머물고 있는 권모(38·여)씨는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자주 깬다. 학교에서 지진을 겪은 아들(10)은 당시 상황을 “굉장히 무서웠다”고 기억한다. 권씨는 “아이가 텔레비전 뉴스도 안 보려고 한다”며 “어쩌다 화면을 보면 내가 ‘괜찮아지고 있다’고 안심시킨다”고 말했다.

지진이 없는데도 술에 취한 듯 어지럼을 느끼는 지진 후유증 ‘지신요이’(地震醉い·지진 취기)를 호소하는 사람은 일본에서 더욱 늘고 있다. 일본인들은 ‘지진 후 줄곧 몸이 흔들리는 느낌이 든다’ ‘술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는 사람이 진짜 많다’ 등 경험담을 인터넷에 올렸다. 요미우리신문은 “지진 직후 멀미 같은 증상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된다”는 이바라키(茨城)현 거주 남성의 사연을 소개했다.

일본적십자사의 기타 에츠코 박사는 “(지금처럼) 여진이 반복될수록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강진이 재발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지신요이를 부추긴다.

도쿄 이케가미클리닉 이케 히데아키 원장은 “독신자는 불안감이 더 클 수 있다”며 “친구나 가족과 자주 연락하라”고 조언했다.

강창욱 김지방 김유나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