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원전 위기 은폐… 간 총리 사퇴” 도쿄서 수백명 시위

입력 2011-03-19 00:39

동일본 대지진 발생 일주일째인 18일, 지금까지 차분히 질서를 지키며 재해에 대처하던 일본인들의 태도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일본인들의 인내력도 조금씩 바닥나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미야기(宮城)현에서 400여㎞ 떨어진 도쿄 인근에서는 규모 5 이상의 여진이 계속되고, 석유와 식음료 공급이 제한됐다. 이 때문인지 도쿄에선 우유, 생수, 식빵, 즉석면 같은 필수 식음료와 화장지 등 생필품 사재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추가 폭발 가능성이 보도되면서 지진 이후 첫 거리시위도 있었다. 지난 17일 오후 7시 도쿄 시부야 거리엔 일본인 수백명이 후쿠시마 원전과 관련한 일본 정부의 미온한 대응을 비판하며 시위했다. 이들은 방사성 물질을 막기 위한 마스크를 쓰고 ‘원전 반대’라고 적힌 피켓과 ‘간 나오토 정권을 타도해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를 걸었다.

집회를 주최한 ‘학생동맹’은 기관지 ‘전진(前進)’을 통해 학생과 노동자 360여명이 시위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호세(法政)대학 문화연맹의 사이토 위원장은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을 위기로 몰아넣고도 은폐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시위 참가자는 “정부가 원전 개발을 중지하고 재난 지역에 빨리 식료품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호쿠(東北)대학 학생자치회 이시다 마유미 위원장은 간 총리 퇴진을 요구했다. 학생동맹은 20일 오후에도 도쿄 요요기 공원과 시부야 거리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다.

이에 자극받은 듯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가 18일 전국에 생방송된 TV연설을 통해 침착하게 행동한 국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한 뒤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발생한 문제가 조만간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다음주 피해지역을 찾는다는 계획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원전 사고 초기 미국이 제안한 기술지원을 거부해 위기상황을 키웠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미국이 사고 원전 해체에 대한 기술지원 제공 의사를 밝혔으나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거절했다”며 “일본 정부가 미국의 냉각수 제공도 거부했다”고 전했다.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오히려 미국 정부의 제안에 최대한 협력하겠다고 했다”면서 “이쪽에서 필요없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일본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이 강하고 분명한 리더십의 부재 때문이라는 외국의 지적도 잇따랐다. 뉴욕타임스(NYT)는 “일본 국민과 언론은 정부와 도쿄전력 관계자가 원전 위기와 관련해 신속하고 분명한 의사소통을 회피한 것에 좌절하고 화가 났다”고 보도했다. 특히 일본 정부 관리들이 모호한 언어를 사용하고 가장 기본적인 사실조차 확인하길 꺼리는 등 이들의 설명에는 ‘정보’가 빠져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꼬집었다.

도쿄=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