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소년’ 유골 부검 법의학자 채종민 경북대 교수 “억울한 죽음, 밝혀낼 때 큰 보람 느끼죠”
입력 2011-03-18 17:59
“수수께끼를 푸는 기분입니다.”
17일 대구 경북대의학전문대학원 법의학교실에서 만난 채종민(59·사진) 교수는 “앞에 놓인 시신의 사인(死因)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마치 아무도 모르는 퀴즈를 혼자서 푸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1988년부터 20년 넘게 법의학에 몸담은 베테랑 법의학자다. 특히 2002년 실종 11년 만에 발견된 ‘개구리 소년들’의 유골을 부검해 골절과 미상의 발사물에 의한 흔적 등을 발견, 소년들이 살해됐음을 밝혀낸 인물이다. 2003년 2월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시신 60여구의 신원을 밝히기도 했다.
채 교수는 최근 종영된 국과수 법의관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싸인’은 현실과 동떨어진 설정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그는 “법의학에서 경찰과 의사의 역할이 분명하기 때문에 수사와 현장 조사는 경찰이, 시신을 부검하는 것은 의사가 한다”며 “법의관이 현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것은 역할을 침범한 것이기 때문에 말도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드라마 속 법의학의 열악한 환경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인정했다. 현재 검시 관련법이 하나도 마련돼 있지 못한 데다 법의학교실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전무하다는 것이다. 또 부족한 인력에 시스템도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
채 교수는 “선진국은 법의학도에게 훈련비와 연구비 등을 지원해주고 부검 시 다른 병원의 의사가 동반 입실하는 등 중립성과 독립성을 잘 보장하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지원이 없어 후배들에게 돈과 명예 어느 것도 제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법의학은 범죄예방, 사고예방, 질병예방을 위해 존재하고 선진국일수록 사고예방과 질병예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하지만 법의학 인력과 인식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런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올해 사건 발생 20년을 넘긴 ‘개구리 소년’ 사건에 대해서도 생각을 밝혔다.
그는 “당시 실종된 어린이 5명이 한꺼번에 살해됐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 누구도 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이 때문에 수사가 실종자 수색이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며 “하지만 이는 경찰의 잘못만은 아니다.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사회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생긴 일인 만큼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채 교수는 “사람들이 탐정소설을 좋아하는 것처럼 억울한 죽음의 비밀을 밝혀내는 이 일이 재미있다”며 “죽음의 이유를 밝히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시민들의 안전을 돕겠다”고 말했다.
대구=글·사진 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