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기독교 윤리란 무엇인가
입력 2011-03-18 17:23
기독인은 사랑의 존재
성령을 따라 행하라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변화된 피조물이다. 지고선인 아가페를 지향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사랑의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의 성품을 닮아가며 그가 보여준 길을 따라가려 애쓴다. 이렇듯 선한 행위의 주체로서 살기는 하지만, 자신이 가진 선한 능력으로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지 못하는 존재가 또한 기독교인이기도 하다. 자신이 가진 자율적 존엄성이나 이성적 판단 능력과 의지에 의해 도덕이나 윤리를 바로 세우지는 못한다.
의무의 윤리학자 칸트는 사람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윤리적 정언 명령을 ‘선의지에 따라 자율적으로 행동하라’는 것에 두었다. 칸트는 의지의 자율성만이 모든 도덕적 의무의 법칙이 된다고 했다. 의지의 타율성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행위 규칙은 자율적이면서도 타율적인 성격을 지닌다. 선의지의 근거를 나 자신만이 아닌 밖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좇는 신앙인일지라도 인격이 완전하거나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영,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으로 사랑을 행하는 존재이다. 나의 자율적 의지만으로는 아가페를 실현할 수 없다. 그리스도에 속한 자에게 합당한 정언 명령은 나의 선의지를 가지고 성령의 능력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요한 기자는 말한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일 4:12∼13)
성령은 도덕적 주체인 신앙인을 선의지로 이끈다. 선한 양심으로 나가도록 일깨우고, 권면한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도록 한다. 성령은 그들을 결코 강제적으로 이끌지 않고, 자율적으로 선을 향하도록 인도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갈 5:16)고 권면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나아갈 때, 기독교인은 자유의지로써 하나님과 이웃 사랑을 온전히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아가페를 위시한 희락과 화평,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인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를 알알이 맺을 수 있다.
아가페는 성령의 은사다. 성령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래서 신앙인은 도덕적 의를 세우거나 자기 행위에 대해 자랑할 수 없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몸을 불사르는 희생과 헌신을 했다 할지라도 의를 세우면 이미 그것은 아가페가 아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신 은혜로 사랑했으므로 사랑에 대한 어떤 보상이나 대가를 바랄 수 없다. 조건 없이 받은 것, 조건 없이 주어야 한다.
가장 가난하고 볼품없던 마더 테레사, 그녀는 왜 이국 땅 인도의 콜카타로 갔을까? 가난한 사람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 병들고 실패한 이들이 모여 사는 어두운 곳에서 그녀는 어떻게 그토록 널리, 그토록 환하게 사랑의 등불을 밝힐 수 있었을까? 그녀가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순종해 성령을 따라 행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강병오 교수(서울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