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 신생아 위해 뜨개질하는 김우형 할아버지 “털모자가 갓난애 살린다잖아”
입력 2011-03-18 22:23
김우형(78) 할아버지는 요즘 엄청 바쁘다. 경기도 연천에서 농사짓는 그는 예전 같으면 겨우내 광에 넣어뒀던 농기구나 챙기면서 슬슬 마실 다닐 때다. 농한기에 무슨 부업이라도 시작한걸까?
김 할아버지가 겨울에도 손 쉴 새 없이 분주해진 것은 2년 전부터. 바람이 서늘해지는 10월부터 털모자를 뜬다. 할아버지가 하는 부업치고는 별나다 싶은데, 돈이 생기는 일이 아니라 외려 실 값이 들어간단다.
“내가 뜬 이 모자가 아이 생명을 구한다잖아. 어려서 사촌누이한테 배운 뜨개질이 이렇게 쓰일 줄 누가 알았겠어요. 허허.”
김 할아버지가 두툼한 손으로 한올한올 뜬 털모자는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해 아프리카 네팔 등지로 보내진다. 털모자는 일교차가 큰 그곳에서 신생아들의 체온을 보호해 조기 사망을 막아 준다.
꽃샘추위로 바람이 매섭던 지난 15일, 김 할아버지는 서울 아들네 집에 다니러 와서도 뜨개질을 멈추지 않았다. 모자는 80코를 잡아 가터뜨기 12단, 메리야스뜨기 20단을 한 다음 16단에 걸쳐 80코를 8코로 줄여야 한다. 초보자들은 몇 번씩 떴다풀었다 할 만큼 녹록치 않다. 1남4녀를 키우며 조끼 스웨터 반코트를 직접 떠 입힐 만큼 솜씨가 좋았던 할아버지는 줄줄이 색깔까지 넣어 가면 짱짱한 모자를 떠낸다. 능숙한 솜씨지만 모자 하나 뜨는 데는 꼬박 3시간쯤 걸린다니 보통일은 아니다.
3차 캠페인(2009년 10월∼2010년 2월) 때 딸들의 권유로 참여한 김 할아버지가 지금까지 뜬 모자는 60여개나 된다. “동생과 함께 뜬 모자보다 아버지 혼자 뜨신 게 더 많다”는 셋째 딸 경미(42·서울 창동)씨의 말에 김 할아버지는 손을 내저었다.
“나 혼자 하는 건 아니지. 뜨개질은 내가 하지만 완성은 네 엄마가 해.”
마름모꼴로 뜨고 나면 양쪽을 맞잡아 꿰매 모자 모양을 만드는 일은 김 할아버지의 아내 채만복(73) 할머니 몫. 채 할머니는 “마주앉아 자식들 얘기 두런두런 나누면서 이 양반은 뜨개질하고 나는 바느질 하니 재미있고, 갓난아이들 살리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으니 더없이 좋다”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모자뜨기 캠페인에 손품만 보탠 게 아니다. 4차 캠페인 포스터 모델로 나서기도 했다. “뜨개질 하는 할아버지는 없다. 도와주면 할아버지 참가자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말에 두말 않고 카메라 앞에 섰다는 김 할아버지는 “모델 출연 기념으로 털실을 듬뿍 줘서 모자를 여러 개 더 뜰 수 있었다”고 흐뭇해했다.
김 할아버지 내외는 모자 뜨기를 하면서 딸도 얻었다고 자랑했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 펼치는 1대 1 후원에 참여해 방글라데시에 사는 아스마니(10)에게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할아버지는 ‘늦둥이 딸’을 보기 위해 해외여행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경미씨도 이디오피아에 사는 테스파에(10)를 아들로 삼아 돕고 있다.
김 할아버지의 며느리 허소현(42·서울 길음동)씨는 “집안어른들이 좋은 일 하시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이 자연스레 어려운 이웃돕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고마워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손녀 주원(9·초등 2)양은 모자를 뜨고 있는 김 할아버지에게 “저도 뜰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고모에게서 건네받은 바늘로 제법 한코 두코 떠나갔다. 손자 주훈(11·초등 4)군은 동생을 보면서 살짝 샘이 났는지 할아버지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할아버지 저도 가르쳐주세요.” 김 할아버지는 “올겨울에는 우리 훈이랑 원이랑 같이 떠야겠다”면서 주훈군에게 대바늘 잡는 법부터 알려 줬다.
“일본이 우리한테 나쁜 짓을 많이 했지만 그건 조상 때 일이야. 이번 지진과 쓰나미로 죽은 사람들을 보니 울음이 나오더라. 십시일반 도우면서 살아야지. 어려운 이들이 있으면 도와야 해.”
할아버지는 손을 재게 놀리면서 손자 손녀에게 말했다. 할머니는 “아무렴” 후렴을 넣었고, 딸과 며느리는 “우리 아버님은 못 말려” 하면서도 박수를 쳤다. 아이들도 질세라 큰소리로 말했다. “아기들에게 우유를 보내요.” “옷도 보냈으면 좋겠어요.”
◇Key Word : 모자뜨기 캠페인
국제아동권리기관인 세이브더칠드런이 전 세계적으로 펼치고 있는 운동이다. 우리나라는 2007년말 시작했으며, 3차에 걸쳐 7만984명이 참여해 19만8911개를 떴다. 참여하고 싶다면 모자 2개를 뜰 수 있는 털실과 뜨개도구 등이 포함된 키트를 GS샵(www.gsshop.co.kr)에서 1만2000원에 구입한 뒤 모자를 떠서 세이브더칠드런(02-6900-4400)으로 보내면 된다. 4차인 올해는 3월말까지 완성된 모자를 받는다. 세이브칠드런은 모자는 물론 키트 구입비 전액도 아프리카에 의료비로 지원하고 있다. 이 사업은 GS샵 후원으로 이뤄진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