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日기업·개인 해외투자금 회수 우려… 戰後 최고치

입력 2011-03-17 21:33


치솟는 엔화 왜?

엔화 가치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수준으로 급등(엔·달러 환율 급락)했다.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16일 오후(한국시간 17일 새벽) 한때 전날보다 4.2엔 치솟은 달러당 76.52엔을 찍었다가 79.59엔에 장을 마쳤다. 일본은행은 이날 오후 5조엔을 투입했으나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전날보다 1.81엔 급등한 달러당 79.15엔에 거래돼 심리적 마지노선인 80엔선이 무너졌다. 엔화 가치는 1995년 4월 19일의 전후 최고인 79.75엔을 웃도는 수준이다.

호주와 뉴질랜드 달러가 엔화 대비 3∼4% 폭락한 것을 비롯해 스위스 프랑을 제외한 세계 주요국 통화들도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엔화값 왜 치솟나=일본은행이 동일본 대지진 직후 지금까지 공급한 유동성은 55조6000억엔에 달한다. 이 정도 자금이 풀리면 보통 엔화가 약세를 보이는 게 정상적이다. 그러나 이런 천문학적인 돈 살포로 인한 엔화 약세 전망을 뒤집고 전후 최고치의 강세를 보인 것은 일본의 기업과 개인들이 해외에 투자했던 자금을 대거 회수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본 기업과 개인들은 제로상태인 자국 금리를 피해 엔화를 빌려 해외 자산에 투자해 왔는데 이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최근 며칠간 엔화 수요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지진피해로 인한 보험사들의 보상금 수요와 기업들의 피해복구 자금 가수요도 가세했다. 일본 정부는 이날 특히 투기세력의 농간을 엔화 강세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나섰다.

◇일본 머뭇거리면 미국이 환율 개입할 수도=국제 외환시장에서는 일본 당국이 엔화를 잡기 위해 남유럽 재정위기가 격화됐던 지난해 9월 이후 6개월 만에 직접 개입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일본 정부는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80엔 밑으로 떨어질 경우 기업들의 수출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경제에 치명타를 줄 것으로 우려했는데 이런 상황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패닉에 빠진 일본인들의 해외투자자금 이탈이 가속화할 경우 엔화 강세에 따라 다른 경쟁국들이 수출증가 이익보다는 이에 따른 국제 금융시장 충격으로 받을 영향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이런 우려로 월가에서는 일본이 머뭇거리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개입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 해외투자금 회수 비상…한국은 고물가 폭탄=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일본의 해외투자 비중은 채권의 경우 서유럽이 40%로 가장 높고, 북미와 중남미도 각각 32%와 17% 등으로 크지만 아시아는 1%에 불과하다. 주식투자 비중은 북미 지역이 42%, 서유럽 31%, 중남미 15%, 아시아 8% 수준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 일본은 아시아에 투자했던 채권을 31.7%나 회수했고 동유럽 21%, 중남미 18.8%, 북미 18.6%를 각각 회수했다. 주식 투자 감소비율은 동유럽 80.9%, 오세아니아 62.2%, 아시아 59%, 서유럽 49% 등이었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번 대지진으로 일본 투자자들이 선진국에 비해 아시아 지역에서 회수하는 비율이 높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일본 채권투자자금은 7000억원으로 미미한 수준이고, 주식자금 6조원이 들어와 있지만 1.8%에 불과해 회수하더라도 큰 영향은 없을 전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엔화 강세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현상으로 원·달러 환율이 덩달아 오르고 있어 고물가를 부채질하는 형국이다. 대지진 여파로 지난 11일 달러당 1120원대에서 17일에는 장중 1140원대까지 뛰어올랐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 오를 경우 소비자물가를 0.80% 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이동훈 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