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최후 보루’ 압력용기 폭발땐 격납용기→건물 연쇄붕괴

입력 2011-03-18 00:35


최악 치닫는 원전… 가능한 시나리오

동일본 지진으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일본 당국이 원전에 새 전력선 설치를 거의 완료해 부분적으로 전력 공급이 이뤄지면서 사태수습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전망되고 있지만, 아직 냉각장치가 재가동된 것은 아니어서 앞으로 약 48시간이 중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만약 이 기간 안정적인 냉각수 공급이 안 될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도쿄전력은 16일 제1원전 1호기 핵연료봉의 70%, 2호기의 30%가 손상된 상태라고 밝혔다. 냉각수 부족으로 연료봉이 장시간 공기에 노출됐기 때문에 덮고 있는 금속 피복재에 작은 구멍이나 균열이 생긴 상태다.

2호기는 격납용기에 있는 ‘압력응축 장비’에서 폭발이 일어나 균열이 생겼다. 3호기의 격납용기 손상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5, 6호기도 냉각장치 이상이 감지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헬기와 지상에서 냉각수 공급을 통해 원자로가 과열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지만 아직 역부족이다. 이처럼 냉각수 공급이 충분치 않은 상황이 계속되면 최악의 경우 원자로의 노심이 녹아내려 격납용기 바닥으로 흘러나올 수 있으며 방사성 물질의 대량 누출로 이어진다. 격납용기는 격납건물과 압력용기(연료봉을 싸고 있는 최후의 방어막) 사이에 있는 강철 구조물이다. 1979년 3월 2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 아일랜드 원전 사고는 노심이 용암처럼 녹아내려 원자로 바닥을 뚫고 나가기 직전까지 갔었다.

증기 폭발도 우려된다. 고온의 노심 용해물은 물을 만나면 증기 폭발을 일으킨다. 격납건물 바닥에 수분이 있거나 노심 용해물이 격납용기와 2m 두께의 격납건물 바닥 콘크리트까지 뚫고 지하수와 만나면 대규모 증기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건물 일부를 붕괴시킨 수소 폭발보다 증기 폭발의 강도가 더 셀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1986년 4월 구소련(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 역시 증기 폭발과 수소 폭발이 연달아 일어나 피해가 컸다.

노심 용해물이 물과 만나면 원자로(압력용기) 내부에서도 증기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현재 후쿠시마 원전에는 원자로를 냉각하기 위해 바닷물을 주입하고 있다. 노심이 완전히 녹으면 바닷물과 반응해 내부에서 증기 폭발이 일어난다. 바닷물이 뜨거운 노심 용해물과 만나면 증기가 짧은 순간에 대량 발생해 원자로 내부 압력이 커지는데 12기압 이상으로 올라가면 원자로 압력용기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

S K 말호트라 인도 원자력청 연구원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노심용해가 진행된 원전 격납용기 안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현재까지 10% 정도로 본다”고 밝혔다.

원자로는 상부가 더 약한 구조이기 때문에 압력용기가 붕괴되면 뚜껑이 열리듯 튕겨나가 바깥에 있는 격납용기를 타격해 깨뜨린다. 이렇게 되면 건물까지 파괴되는 증기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미국 스리마일 아일랜드 사고와 달리 문제를 일으킨 원자로가 3개 이상이고, 격납용기가 일부 파손된 데다 4호기의 사용후핵연료봉의 핵분열 연쇄반응 문제까지 더해져 사고의 심각성 면에서 스리마일 아일랜드 사고를 한참 뛰어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미 천연자원보호협의회(NRDC)의 톰 코크란 수석과학자는 “이번 사고가 스리마일 아일랜드보다는 조금 나쁘지만 원자로 자체가 폭발한 체르노빌과는 거리가 있다”면서 “다만 노심의 녹은 핵물질을 격납용기가 차단할지 여부 등 불확실한 변수가 많다”고 설명했다.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장순흥 교수는 “현재까지 상황으로는 노심 손상이 크게 발생한 ‘중대 사고’ 수준으로 볼 수 있으며 만에 하나 노심이 다 녹고 격납용기까지 손상되면 체르노빌 사고 수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린피스의 국제 핵 캠페인 책임자인 잰 베라넥은 그러나 “최악의 경우에도 방사성 구름이 대기에서 그리 멀리 가지 않을 것이며 이번 사고로 인한 피해지역이 일본에 국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