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서로 “네 탓” 공방… 부실 대응이 禍 키워
입력 2011-03-17 23:35
도쿄전력 사장 “작업 인원 모두 철수해야”
간 나오토 총리 “책임감이 부족하군요”
“후쿠시마 원전 작업 인원 전원의 철수를 요청합니다.”(도쿄전력 시미즈 마사타카 사장)
“도쿄전력은 책임감이 무척 부족하군요.”(간 나오토 총리)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두 번째 폭발과 냉각장치 가동 중단 사태가 벌어졌던 지난 15일 새벽 간 총리와 시미즈 사장 사이에 이 같은 언쟁이 벌어졌다고 요미우리신문이 17일 보도했다.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갈수록 악화되는 가운데 정부와 도쿄전력 간의 책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무능한 정부와 미숙한 전력회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15일 새벽 4시 시미즈 사장은 도쿄 나가타초의 총리관저로 달려가 원전 현장 직원의 철수를 요청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의 폭발에 이어 2호기에서도 냉각장치가 가동 중단되고 연료봉이 공기 중에 노출되는 등 긴박한 상황이었다. 1시간 뒤 이번엔 간 총리가 우치사이와초의 도쿄전력 본점을 서둘러 방문했다.
“철수는 있을 수 없다. 각오를 해 달라. 지금 철수하면 도쿄전력은 100% 무너진다.”
간 총리의 고함은 사장실 밖까지 들렸다.
간 총리가 돌아간 직후인 새벽 6시 2호기가 폭발했다. 당시 원전 내에는 도쿄전력과 관계사 직원 800명 중 750명이 철수하고 50여명이 머물러 있는 상태였다.
최악의 원전 사고 앞에서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서로를 불신하고 있다. 간 총리를 본부장으로 한 원전사고 대책본부는 도쿄전력 본사에 설치돼 있다. 정부는 “사실상 감시하는 역할”이라고 밝혔다. 간 총리는 16일에도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면 동일본이 부서지는 상황도 각오해야 하는데, (도쿄전력은) 위기감이 부족하다”고 공개적으로 질타했다.
반면 도쿄전력 측은 “일시 대피를 요청한 것일 뿐이지 철수는 있을 수 없다”며 정부가 과잉 대응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시미즈 사장이 총리 관저를 찾아간 것도 “정부가 요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쿄전력이 불신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 도쿄전력은 지난 2002년에도 30년간 안전검사 결과를 허위로 보고한 사실이 드러나 공개적으로 사과한 바 있다. 도쿄전력의 주가는 지진 이후 67% 하락했다.
도쿄전력은 지난 1월 착공한 아오모리현 히가시도리 원전 건설도 중단키로 17일 결정했다. 히가시도리 원전은 도쿄전력이 33년 만에 새로운 위치에 착공한 야심적인 프로젝트였다. 다음 달 시운전에 들어갈 계획이었던 아오모리현의 핵연료 재처리 공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간 총리도 비난받긴 마찬가지다. 그는 이번 지진으로 ‘아키 간(あきカン)’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간 총리의 성(姓)이 깡통(캔)과 발음이 같아 ‘빈 깡통’이라고 놀리는 말이다. 그는 헬기로 지진 피해 현장을 찾는 등 사태 수습을 지휘하는 모습을 연출했지만, 정작 원전 사고는 NHK 보도보다 늦게 보고받았고 절전 대책도 우왕좌왕하는 등 실제론 미숙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사태의 실상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는 지난 15일 기자 회견에서 “일본에서 보내오는 정보에 모순이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일본 리더십의 미숙한 대응이 위기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