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화련] 이웃을 위한 기도

입력 2011-03-17 18:09


엄청난 지진과 해일이 일본을 덮친 후로 일손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하고 음식을 먹지만 눈과 귀는 온통 ‘재앙’에 쏠려 있다. 어떻게 이런 무서운 재난이 닥쳤을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목숨을 앗아갔단 말인가. TV를 켰다 끄기를 반복한다. 켜면 처참한 광경에 가슴이 아프고 끄면 궁금하고 불안하다.

처음 지진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흘려들었다. 일본의 지진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잘 수습되겠지 했다. 해안도로를 달리던 자동차가 파도에 휩쓸리는 장면을 보고도, 전속력으로 달렸더라면 화를 면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쓰나미의 속도가 제트기의 속도와 맞먹고 그 속도가 시속 700㎞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얍삽하게도 우리 생각부터 했다. 이웃 나라의 땅이 갈라지고 바다가 뒤집혔으니 그 피해가 혹시 한반도까지 미칠까 두려웠다. 지진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막대할 거라는데 그 여파로 우리 경제가 어려워지는 건 아닐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해 방사능이 유출됐다는데 해로운 물질이 현해탄을 건너오는 것은 아닐까…. 그곳에 둥지를 튼 우리 교민과 유학생 등 한국인의 안위를 걱정했다. 그러다 곧 뉘우쳤다. 수많은 생명과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집어삼킨 자연재해 앞에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따지는 게 얼마나 이기적이고 어리석은가.

일본 역시 지구촌의 우리 이웃이다. 과거사의 앙금 때문에 멀게 느껴지고, 축구든 뭐든 맞붙으면 절대로 승리를 양보할 수 없는 상대지만 옆집처럼 가까운 나라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만큼 이번 참사의 충격이 그대로 와 닿는다.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슬픔이 무엇보다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한 어머니는 쓰나미가 몰려오는 공포의 순간 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는데 그만 그 손을 놓쳤다며 울먹였다. 또 다른 아버지도 아내와 아이의 손을 힘껏 붙잡았지만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얼굴이 상처투성이가 된 중년의 가장 역시 거센 물살에 밀려 쓰러질 때 가족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제 끝이구나 하면서도 살아서 꼭 가족을 만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그랬을 것이다. 물러날 수 없는 위급한 상황에 사랑하는 이들은 있는 힘을 다해 서로를 보듬었을 것이다. 그랬어도 끝내 쓸려 보내고 만 비통함을 어찌할까. 멀리 있어 손조차 잡을 수 없었던 안타까움을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

그래도 그들은 의연하게 견디고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질서를 지키고 서로를 배려한다. 그 모습은 절망 속에 더욱 돋보이는 희망의 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많은 나라가 일본을 돕기 위해 구조요원과 구호물자를 보내고 있다. 이 또한 절망을 몰아내는 희망의 빛이다. 희망은 계속 피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기도가 필요하다. 한 번의 기도가 한 송이 희망이다. 일본에 더 이상의 피해가 없기를 빈다. 부디 힘내기를, 꿋꿋하게 일어나 우리의 좋은 이웃으로 다시 서기를 기원한다.

이화련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