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문지방 넘기] 예루살렘 길은 십자가의 길… 사순절은 ‘내려감’을 묵상할 때
입력 2011-03-17 17:46
제주도에 가면 도깨비길이 있습니다. 올라가는 길 같은데 실은 내려가는 길입니다. 차에서 내려 음료수 캔을 굴려 보면 아래로 내려갑니다. 우리 눈의 착시현상이 빚어낸 신기한 현상입니다.
성경에도 도깨비길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루살렘 길을 ‘올라가는 길’로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출세와 영광과 높은 자리가 보장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한껏 들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에게 예루살렘 길은 고난의 길, 수치의 길,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세속적인 눈으로 보기에는 올라가는 길 같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내려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수난과 부활을 세 차례에 걸쳐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음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막 8:31). 이를 세 번씩이나 반복한 것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십자가 수난이 그만치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공관복음서는 예수님의 수난 예고와 제자들의 반응을 나란히 엮어 놓았습니다. 첫 번째 수난 예고 때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면 안 된다고 격하게 항의를 합니다(막 8:32). 두 번째 수난 예고 때 제자들은 ‘누가 크냐?’는 논쟁을 벌입니다(막 9:33∼34). 세 번째 수난 예고 때는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오른쪽과 왼쪽의 자리를 달라고 부탁합니다(막 10:35∼37).
사오정이 따로 없습니다. 예수님은 낮아짐을 말하는데 제자들은 높아짐을 꿈꿉니다. 예수님은 자꾸 작아지고자 하는데 제자들은 누가 더 크냐를 따집니다. 예수님은 희생을 말하는데 제자들은 성공과 부귀를 추구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각오하고 있는데 제자들은 십자가를 거부합니다. 극과 극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앞에 두고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과 대립을 보이고 있습니다. 내려가는 길이냐 올라가는 길이냐 하는 것은 공관복음서의 후반부를 꿰뚫고 있는 핵심 주제입니다.
돈키호테가 산초를 설득할 때 섬의 영주를 시켜주고, 공주를 아내로 삼게 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산초가 돈키호테를 따라나선 것은 바로 이 감언이설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산초처럼 한 고을의 맹주가 되어 예쁜 공주를 아내로 삼고 떵떵거리며 사는 생활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풍성하게 쏟아지는 축복과 성공 신화, 출세와 승진과 형통의 가르침이 돈키호테의 감언이설이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복음의 핵심은 ‘내려가는 것’입니다. 섬김과 희생과 고난의 길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내려가는 것이 빠져버린다면 그것은 복음의 변질이고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가 말한 대로 싸구려 은혜가 됩니다.
사순절은 ‘내려감’을 묵상하는 때입니다. 낮아짐과 내어줌과 십자가를 깊이 묵상합시다. 우리의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 나가 영적 착시현상에서 벗어날 때까지. 그래서 예루살렘의 길이 도깨비길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로 보일 때까지.
오종윤 목사 (군산 대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