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협박 울란바토르에선 무슨 일이… ‘몽골 스캔들’ 내막과 영사들의 세계

입력 2011-03-17 17:55


외교관들 사이에서 몽골이 ‘위험지역’이라는 인식은 어떤 평판 혹은 경고처럼 퍼져 있다. 확실히 200개가 넘는 해외 공관 중 주몽골 한국대사관은 ‘사고 다발 지역’에 속한다. 지난 6년간 대사 두 명과 영사 한 명이 이곳을 거쳐 옷을 벗었다. 최근 10년 몽골 대사 3명(현직 제외) 중 2명이 연루된 셈이다. 사직 배경은 다양했다. 여자를 둘러싼 잡음이 있었고, 한인회 집단행동에, 개발을 둘러싼 신경전과 폭로, 비자 비리도 있었다.

거주 한인 2500명. 그 작은 몽골 한인사회에서 지난 몇 년간 벌어진 사건은 물론 예외적이고 극단적이다. 하지만 소문이 추문으로 증폭돼 유통되는 과정에는 한인사회와 현지 외교인력 사이의, 더 보편적인 갈등이 존재한다. 정치 및 통상 업무 비중이 낮은 개발도상국. 상대적으로 대민 서비스에 대한 교민 요구는 높은 편이다. 그곳에서 ‘더 많이 도와 달라’는 교민과 ‘그게 우리 일인지’를 확신하지 못하는 외교관은 자주 부딪쳤다. 양자 갈등이 빚어낸 사건의 종합세트. 그게 몽골이었다.

6년 새 대사 2명 떠난 이유는

최근 중국 여인 덩신밍의 ‘상하이 스캔들’이 터진 뒤 ‘울란바토르(몽골 수도) 스캔들’이 세상에 알려졌다. P 전 몽골 대사가 재임 중 현지 여성과 관계를 맺어 아이까지 낳았다는 내용이었다. 2008년 말 청와대, 감사원 등에 진정이 제기됐고, P대사는 이듬해 2월 사표를 제출했다.

김 모 전 한인회 간부 말을 들어보면, 소문은 2008년 가을 한인사회에 퍼지고 있었다. 김씨는 “이 여성이 한인회에 찾아와서 직접 만났다. 우리는(한인들은) 최대한 소문이 나지 않길 바라는 입장이었다. 몽골사회에 알려지면 자칫 교민들이 엉뚱하게 피해를 볼 수도 있었다.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한인사회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의견을 P대사 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현재 P대사는 불륜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자신과 갈등을 겪은 ‘문제 교민’이 음해성 투서를 했다고 주장한다. 다수가 덮고 싶었던 사적 분쟁이다. 이게 ‘사건’으로 비화한 데는 P대사가 고위 공직자라는 사실 외에도 그의 말처럼 사연이 있다.

제보자 중 한 명은 Y 전 몽골 상공인회장. 동(東)몽골 개발을 둘러싸고 P대사와 갈등을 겪다 2008년 12월 비자 관련 부정행위에 대해 조사를 받고 몽골에서 추방됐다. 그는 P대사의 개입을 의심했다. “한국대사관이 몽골 당국에 나를 고발해 부당하게 조사받았다. 무혐의 결정이 내려졌는데 결국 추방까지 당했다. 모든 게 P대사 눈 밖에 난 뒤 벌어졌다.”(Y 전 회장)

그 후 2년 넘게 벌어진 Y회장과 P대사 측의 공방전에 한인사회는 선뜻 누구의 손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Y회장을 고발한 게 한국대사관이라는 사실에는 여럿이 분개했다. 박 모 전 한인회 간부는 말했다. “여기 한인들은 (스캔들이) P대사와 Y씨 사이 쓸데없는 감정싸움 때문에 불거졌다고 본다. 서로 조금씩 억울한 게 있을 거다. 다만 대사관이 왜 교민을 고발했는지, 그건 이해하지 못하겠다. 잘못한 게 있더라도 한국에 돌아가 한국 법에 따라 처벌받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지점에서 교민과 대사관 입장은 갈린다. 전 몽골대사관 관계자 설명이다. “몽골 사람이 한국에서 범법행위를 하면 한국 법에 따라 처벌받듯, 한국 사람도 마찬가지다. 물론 부당한 대우나 인권침해가 없도록 도와줘야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잘못이 있으면 처벌받는 거다. 심지어 ‘중국 무관은 자국민을 폭행한 몽골인을 두들겨 패주는데 우리 영사는 왜 안 하나’라고 말하는 교민도 있다. 남의 나라에서 그게 말이 되는 얘기인가.”

대사관에 대한 몽골 교민사회의 불신은 뿌리가 깊다. 전임 K대사가 근무하던 2005년 무렵의 일이다. 한류와 함께 밀려든 한국인의 섹스관광 등은 몽골에서 반한(反韓) 감정을 위험 수위로 높였다. 몽골 극우청년들의 교민테러가 빈발했다. 몽골의 한 한인 언론인은 “그때 정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몽골에서 다 철수하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한인들은 공관에 의지했는데 공관은 늘 하던 일상적인 일만 했다. 그때 대사관의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한, 철밥통 같은 자세에 한인의 분노가 폭발했다”고 말했다. 한인회는 항의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당시 성명서 한 대목이다. “대사는 한인회장에게 깡패집단 운운하는 등 반말로 대하기 일쑤이고…교민행사에는 핑계를 대며 불참하고 심지어 직원 참석조차 못하게 했습니다. 대사는 교민사업장에 들러 과연 이역만리에서 불편한 점이 무언지, 무엇을 도와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K대사는 1년6개월 만에 물러났다.

기대와 현실 사이

“우리 교민들이 해외에 나가 국민으로 제대로 대접받으려면 외교관의 인식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물론 교민들도 문제가 많다. 안다. 몽골만 해도 전과를 가진 교민들이 있다. 그러다보니 대사관 직원들이 후진국 교민을 우습게 본다. 대사관에서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인수인계하는 첫 번째가 교민들 만나지 마라, 그런 거다. 하지만 과거에 잘못을 저질렀다고 전부 매도해선 안 된다. 열악한 땅에서 잘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 다수다.”(Y 전 상공인회장)

“교민들이 영사업무에 대해 좀… 불만이 많이 있는 게 사실이다. 아무래도 문제는 자세인 것 같다. 봉사하려는 자세여야 하는데 그게 틀려먹었다는 게 불만이다. 대사관에 찍히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겠다, 그런 불안 같은 걸 갖는 교민도 없지 않았다.”(김 모 전 한인회 간부)

“(외교통상부가) 대민업무가 많지 않은 부서이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나 생각한다. 점수를 준다면 중하(中下) 정도. 기본적으로 ‘내가 좀 높다’ 그런 마음으로 교민을 대한다. 생각이 행동으로 안 보일 수가 없다. 2∼3년 살다 가니 책임감이 아무래도 우리보다 낮지 않겠나. 교민 중에 말도 안 되는 개인사로 우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안다. 애쓰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영사들에 대해) 답답함이 있다.”(Y 전 한인회 관계자)

영사업무에 대한 교민 평가는 높지 않았다. “나아졌다”거나 “애쓰고 있다”는 말과 함께 반드시 등장하는 게 태도에 대한 지적이었다. 각종 국가시험을 통과해 해외에 파견된 외교 인력이 갖는 자부심. 그건 콧대 높은 엘리트 의식과 고압적 자세, 교민 비하로 번역돼 전달되곤 했다. “동사무소만도 못한 서비스” “해야 할 일만 하는 소극적 서비스”라는 언급도 있었다. 교민들은 ‘주어진 일만’이 아니라 ‘찾아서 일하는’ 대사관을 기대했다.

양측 인식차가 다시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 중견 외교관의 말이다. “동사무소와 같은 서비스를 영사에게 기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주한 베트남 영사가 한국에서 그런 서비스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상식적으로. 영사업무의 한계에 대해 국민이 기대하는 것과 외교관이 ‘자기 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인식하는 것 사이에 분명하게 괴리가 존재한다.”

외교관은 4가지 의무를 진다. 국가를 대표하고, 협상에 임하고, 정보를 수집 보고하고, 재외국민 및 국익을 보호한다. 네 번째 ‘재외국민 보호’는 외교관의 주요 업무지만, 그간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특히 엘리트 외교직에 교민과 관련된 영사업무는 ‘잠깐의 희생’ 정도로 인식돼 왔다. 반면 국민 기대는 꾸준히 높아졌다. 지켜보는 국민의 눈에 직접적으로, 감정적으로 업무성과가 확인되는 분야 역시 ‘재외국민 보호’다. 그간 “더 많이 도와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을 외교부가 눈치 채지 못한 건 아니다. 영사 인력이 보강되고, 인센티브가 제안되고, 대민 서비스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와 현실, 그 둘 사이 틈은 여전히 넓어 보였다. 그걸 메우는 작업 역시 이제 시작인 듯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