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일’ 펴낸 김영선 박사… “왜 한국 월급쟁이들은 휴가를 죄악시할까”

입력 2011-03-17 17:26


프랑스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어떤 월급쟁이가 연차휴가 15일에 앞뒤로 주말을 더해 바캉스를 떠났다고 치자. 열에 아홉은 “미친 것 아냐”라거나 “직장에 큰 불만을 갖고 있나 보군”이라고 생각할 게 뻔하다. 휴가는 법적으로는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인데도 한국에서 상사나 동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휴가를 즐기기란 쉽지 않다. 이처럼 우리 노동자들의 억압적인 휴가 사용 실태를 연구하고 한국의 노동문화를 고발하는 신간 ‘잃어버린 10일’(이학사)이 출간됐다. 저자 김영선(37) 박사는 1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비정상적인 노동시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가 됐다고 생각해 책을 썼다고 말했다.

“한국 노동자들은 너무 오래 일하고 잘 쉬지도 않아요. 2009년 기준 우리 노동자들의 연간 노동시간이 2316시간에 이르는데, 다른 OECD(국제협력개발기구) 국가와 비교하면 500∼1000시간 이상까지 더 일하는 셈입니다. 그런데도 한국 노동자들은 휴가조차 제대로 보내지 못한다고 하소연합니다. 왜 한국인들이 서구 선진국에 비해 휴가를 죄악시하게 됐는지 학문적으로 따져 묻고 싶었어요.”

‘잃어버린 10일’이라는 제목은 노동자들이 어느 정도 직장에서 자리를 잡게 되면 통상 15일의 연차휴가를 보장 받지만 여름휴가만 사용할 뿐 나머지 10일 정도는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지었다.

2년 전 고려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30대 젊은 학자답게 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현상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에 대한 궁금증을 학문적으로 분석하려고 시도했다. 노동시간을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란 측면에서 해석하려는 기존 학계의 경직된 시각에서 벗어나 자유시간을 쟁취하는 과정을 역사적·문화적·사회적으로 연구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근대화를 거치며 형성된 ‘경영 담론’이 노동자들의 자유시간을 속박해 왔다는 것.

“1990년대 이후 한국의 경영 담론은 휴가를 전부 쓰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걸 국민들에게 주입시켰어요. 일했으니 쉰다는 자연스러운 이치를 지극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또 요즘 휴가는 그냥 쉬는 것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일을 준비하는 재충전의 시간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노동자들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마저 주고 있죠.”

김 박사는 70년대 이후를 크게 통제적 휴가 정치시기(70년대∼80년대말), 선별·배제적 휴가 정치 시기(∼90년대 말), 생산적 휴가 정치 시기(∼현재) 등으로 구분하고 한국 사회에서 휴가의 의미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변질돼 왔는지 살폈다.

그는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직장에 오래 남아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시계 바늘이 오후 6시를 ‘땡’ 치면 퇴근하는 여성을 ‘땡녀’라고 비하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것 같다”며 “이런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장시간 노동문화를 개선하는 일에 우리사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