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조용래 논설위원 르포… “정부 못믿겠다” 도쿄 시민들도 탈출
입력 2011-03-16 21:34
도쿄엔 긴장감이 가득하다. 마치 설이나 추석 명절 때 많은 사람이 귀성을 떠나 도심이 텅 빈 서울을 연상시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시민들은 지진과 원전 폭발로 인한 방사능 공포에 휩싸여 있다.
◇긴장감 감도는 도쿄=방사성 물질이 바람을 타고 도쿄까지 날아왔다는 보도가 나오자 시민들은 “원전이 안전하다는 정부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술렁임이 이어지고 있다. 생활의 터전을 도쿄 남부 지역으로 옮기겠다는 시민들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오사카, 교토, 홋카이도 등에 친척이나 본가가 있는 도쿄 도민들은 비교적 안전한 지역으로 탈출하기 위해 하네다 공항과 신칸센 탑승장이 있는 시나가와(品川)역 등으로 몰려 이 지역이 북새통을 이뤘다.
마스크와 방사능 해독제도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는 전언이다.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중견 약국 체인 야마다약품의 도쿄 마루노우치 지점에서는 마스크가 하루 만에 약 350개가 팔리는 등 급증한 수요에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요다구에 있는 한 약국에서는 마스크가 평소보다 10배 이상 팔렸으며 방사능 해독제로 알려진 요오드제 제품에 대한 문의도 잇따랐다.
슈퍼마켓에서도 긴장감을 엿볼 수 있다. 신주쿠(新宿) 가와타(河田)초에 있는 도쿄한국학교 부근의 식료품 체인점 ‘산토쿠’에는 예상보다 상품들이 넘쳤다. 하지만 우유 코너에는 ‘1인당 2개로 제한합니다’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1인 1개로 제한하는 곳도 있다고 점원은 귀띔한다. 가격은 지진 이전과 비교할 때 크게 오르지 않았지만 공급 체계를 우려하는 사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 사재기마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일본인 특유의 질서의식이 흔들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도로는 한가했다. 이번 지진으로 인근 지바(千葉)현에 있는 코스모석유㈜ 정유소가 불타면서 시내 대부분의 주유소가 재고 부족으로 문을 닫아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봄방학 기간임에도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 특히 어린이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날 수도권 지역인 지바현 인근 해상에서 규모 6.0의 강진이 발생, 건물들이 흔들린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네다의 달라진 분위기=도쿄 취재를 위해 기자가 이날 도착한 하네다의 분위기도 이전과 많이 달랐다. 지난해 10월 하네다 공항 국제선 청사가 신축 개장한 이래 도쿄의 명물로 부상하면서 비행기를 타는 사람보다 내국인 관광객이 더 많았는데 청사는 썰렁했다. 안내 데스크에 물어보니 대지진 이후 출입국자가 줄기도 했지만 내국인 관광객이 현저히 줄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네다 공항에서 도쿄 신주쿠까지 가는 게이규센(京急線)을 이용해 지하철로 갈아탔으나 전철 안도 역시 한가했다.
앞서 기자가 이날 오전 9시 김포공항에서 탄 일본 하네다행 대한항공 2707편은 승객 348명을 태울 수 있으나 80∼90명만 탔다. 지난 11일 동일본 대지진 이후 서울행 노선은 늘 만석이지만 하네다행은 정원의 3분의 1도 안 찬다고 한 승무원이 전했다.
승객 대부분은 일본인이었다. 두어줄 뒤에 앉은 젊은 여성 3인 그룹 중 한 사람은 시종 눈물을 흘렸다. “지진 때문이냐”고 했더니 옆 친구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더 이상 말을 붙일 수 없었다.
도쿄=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