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숲속의 미술공원 ‘예수 얼굴상’ 조각가 정관모씨 “일곱살 손자가 준 작품영감 내 최고 역작”
입력 2011-03-16 19:45
지난 13일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단석리 ‘숲속의 미술공원’. 한 노신사가 거대한 조각상 앞에 한동안 서서 기도를 잊지 않았다. 봄을 시샘하는 바람이 그의 덥수룩한 머리칼을 이리저리 흐트러뜨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얼굴엔 엄숙함과 경건함이 가득했다. 너대니얼 호손의 소설 ‘큰바위 얼굴’의 주인공 어니스트가 바위를 볼 때마다 느낀 감정이 그런 것 아닐까. 찬찬히 조각상을 훑었다. 시선이 조각상 맨 꼭대기에 꽂혔을 때 그는 눈물을 떨궜다. 날카로워 보이는 가시 면류관, 그 면류관을 쓰고 아파했던 한 분이 떠올라 마음이 벅차올랐기 때문이다.
조각상은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버리고 인류를 구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조각가 정관모(74)의 인생 최대 역작 ‘예수 얼굴상’(2008년 작)은 그에게,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에게 여전히 큰 감동을 주고 있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손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사랑하는 손자 성빈에게
하나뿐인 손자 성빈아. 어느덧 열 살이 돼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널 보면 이 할아버지가 여간 기쁘지 않다. 이 할애비는 네가 이곳에 놀러오기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오늘은 성빈이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단다. 우리 성빈이 할애비한테 올 때마다 손잡고 같이 올라가서 보는 예수님 얼굴상 기억하지? 예수상을 볼 때마다 네가 생각난단다. 할아버지한테 예수상에 대한 영감을 준 게 너였던 걸 기억하느냐. 아마 네가 너무 어렸을 때 일이라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진 원래 그리 잘 생기지도 않은 내 얼굴로 조각상을 만들려고 했었어. 이전 제주도 미술관에 다 할아버지 얼굴상을 만들어 놓으려고 20년 동안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단다. 미국 링컨센터에 가면 존 F 케네디 대통령 얼굴상이 하나 있어. 그걸 보고 할애비도 ‘내 얼굴상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던 게야.
그런데 쉽지 않더구나. 사실 3m 정도 되는 조각이면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을 텐데 말이야. 시간과 예산이 맞지 않아 결국 만들지 못하고 말았지.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곳 양평에서 할아버지 얼굴 조각을 막 시작하려던 때, 성빈이가 놀러왔었어요. 네게 “사람 얼굴 크게 해서 조각상을 만들려는데 누구였으면 좋겠니”라고 물었지. 네 대답을 들었을 때 할애비는 무언가로 머리를 맞은 듯했단다.
“예수님요.”
그때 일곱 살이었던 성빈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 할애비가 왜 몰랐는지…. 창피하기도 했단다. 사실 그때 네 얘기를 듣고는 1초의 고민도 없이 할아버지 얼굴 조각을 포기했어. 그리곤 네 말대로 예수상 만들기에 전념했지.
참 희한하더구나. 그렇게 할애비 얼굴상을 만들려고 애써도 안 됐는데, 예수상을 만들려니 일이 너무나 잘 진행되는 게야. 3m 높이의 내 얼굴을 20년 넘게 만들지 못했는데, 15m 높이 예수님 얼굴은 불과 1년 만에 완성하게 되더구나. 하나님께서 어린 성빈이의 입을 통해 할아버지에게 가르침을 주신 거란다. 모든 것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인도 하에 이뤄진 일들이지.
성빈이도 알겠지만 조각 작품은 하나같이 힘든 작업을 거쳐 세상에 나온단다. 예수상은 그중에서도 특히 힘들었어. 일단 예수님의 표정을 택하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어. 과연 어떤 표정을 선택해야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지 고민이 되더구나. 할애비 친구들은 대부분 십자가 위에서 하늘을 보며 절규하는 표정을 원했어. 이해가 갔지. 그런데 할아버지는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우리 성빈이를 사랑하시는 예수의 그 인자한 모습 말이지.
여름철 밖에서 작업을 하다보니 힘든 점이 참 많았다. 그때도 한번 놀러왔었지. 6월부터 9월까지 작업하는데 재료는 녹슨 강철판(corten steel)이었단다. 내리쬐는 뙤약볕, 가열된 철판, 용접기의 열기…. 이 할애비 땀을 비 오듯 흘렸고 탈진할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고통 속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셨던 게 생각나더구나. 할애비는 이 정도도 너무 힘든데 예수님은 그때 얼마나 아프셨을까. 힘을 낼 수밖에 없었어. 네가 가져다 준 얼음물도 마시고, 시원한 것도 많이 먹어가면서 열심히 했지요.
예수상 작업은 그동안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단다. 더 옛날 얘기를 해 줄까. 할애비는 중3 때 교회에 처음 갔어. 충남 공주감리교회.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이었단다. 할아버지는 성빈이와 달리 주일에만 교회 가는 불량 신자였지.
이후 나이가 들어 미국에서 미술을 배울 때 참 많이 힘들었단다. 전 세계의 뛰어난 작가들이 모두 모이는데 할아버지가 설 자리가 없더구나. 재능과 노력, 그것만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걸 그때 깨닫고 많이 낙심했단다. 창피하지만 할애비가 그때 좀 많이 울었어요. 그러고서야 하나님 앞에 엎드렸어. 그동안의 오만함을 용서해 달라고….
성빈아,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례를 받고, 제대로 하나님을 믿고 나니 새롭게 예술에 눈을 뜨게 되더구나.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신 거지. 하나님 지으신 세상 만물의 자연미에 집중하게 됐어. 하나님을 제대로 따르자 허락하신 깨달음이었단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해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는 시편 119편 91절의 말씀.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몰라.
그동안 경험했던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상을 만드는 동안에도 할아버지 마음에 감동을 줬어. 언젠가 꼭 사랑하는 성빈이랑 이 기쁨과 감동을 나누고 싶었는데 참 기쁘구나. 할애비는 앞으로 성빈이가 예수상을 볼 때마다 네 신앙을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예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며 신앙 안에서 무럭무럭 자랐으면 하고….
기억나니. 예수상 완성하고 설치하던 순간 말이다. 할아버지 손잡고 성빈이도 같이 가슴 졸였지. 짝짝짝 박수치며 좋아하는 네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어. 너무 기뻤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을 공개하는 순간이니 말이야.
할애비는 흥분하지 않았어. 마지막 순간 ‘다 이루었다’ 하신 예수님처럼 냉정하고 침착하려 노력했단다. 우리 성빈이도 그랬으면 좋겠어. 훌륭한 사람이 돼서 목표를 이뤘다 할지라도 흥분하지 말렴. 항상 차분하고 침착하게, 가장 먼저 하나님께 감사기도 올리는 것 잊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 성빈이에게 참 고마워. 그때 성빈이가 “예수님요!”라고 안 했더라면 지금 예수상 자리엔 할애비 얼굴이 서 있었을 테니…. 그랬다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조각 좀 한다고 자기 얼굴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좋아한다…. 참 낯 뜨거운 일일 게야.
고맙고 사랑스러운 성빈이를 위해서 오늘은 할아버지가 기도 좀 해야겠다. 두 손 모으고.
■정관모(74)
1937년 7월 29일 대전 출생
홍익대 미대 조소과 졸업
미국 크랜부룩대학미술대학원 조각과 석사
성신여대 명예교수
1994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예술상 수상
2009년 제22회 김세중 조각상 수상
현 C아트뮤지엄 대표
양평=글 조국현 기자·사진 김태형 선임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