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남편 유경한 그리고 아내 김윤금 “무명작가 처음 2쇄 찍었습니다”

입력 2011-03-16 19:39


“따르릉.” 벽시계는 오전 8시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전화 올 데가 없는데….’ 남자는 휴대전화 폴더를 열어 발신자를 확인했다. ‘출판사’. 통화버튼을 누르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왜 이리 주문이 많이 들어와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내 책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변변한 반응조차 없던 내 책이 갑자기….’

꿈같았다. 누군가 마법이라도 부린 걸까. 남자는 의아한 표정으로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통화내용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아내. 그녀는 뭔가 알고 있는 듯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남편과 눈을 맞췄다. 남편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짧은 침묵. 침 삼키는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린 건 처음이었다.

그 여자의 이야기

김윤금. 저는 소설가의 아내입니다. 아니, 무명작가의 안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네요. 51년 인생의 절반이 지났습니다. 가난한 글쟁이와 한 이불을 쓴 게 말이죠. 남편은 참 쿨(?)한 사람입니다. 단 한번도 제게 돈을 가져다주지 않았죠. 가난, 아무리 떨치려 해도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어요.

제게 남편의 글은 다른 어떤 작가의 글보다 재밌지만 사람들은 외면합니다. 유명 작가의 글은 나오는 족족 히트도 잘 치던데…. 남편은 글만 쓰면 처절한 패배의 쓴잔을 맛봐야 했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진압부대 소속 군인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본 소설 ‘달, 덫’, 학원비리를 다룬 ‘교사는 아프면서 간다’. 수년 걸친 노력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2쇄를 찍어본 일도 없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남편은 좌절하지 않더군요. 속으로 얼마나 마음이 썩어 들어갔을까요. 그래도 내색 한번 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저는 백화점 매대 앞에 종일 서서 고객에게 항상 미소 지을 수 있었습니다. 매일 새벽 예배당(인천 논현주안장로교회)에 나가 “다음 작품은 잘될 거야”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3년 동안 기도하는 마음으로 쓴 장편소설 ‘겨리’가 세상에 나오던 지난해 12월 20일. 신간을 가슴에 안고 교회를 찾았습니다. “하나님, 기도하는 마음으로 쓴 책을 많은 사람이 접하고 감동을 느낄 수 있게 해주세요.” 두근거렸습니다. 그동안의 아픔을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하지만 일주일, 한달이 지나면서 남편의 미간은 점점 찡그려졌습니다. ‘이번에도…아니구나.’

더 이상 그에게 해줄 말이 없었어요. 그를 믿고 책을 내준 출판사 관계자, 목사님, 교인들, 부모님…. 고맙고 미안한 얼굴이 스쳐갔습니다. 어느 날 남편 서재 골방 문을 살짝 열었습니다. 차라리 열지 말 것을…. 책상에 엎드린 그의 어깨가 들썩였습니다. 처음으로 그의 눈물을 보고 만 거죠.

“여보…. 왜 울어요. 다음에 또 하면 되잖아….”

“아니요. 소설의 한 부분이 너무 슬퍼서 그래요.”

그 때문이 아니었을 겁니다. 자신감, 기대감이 조각조각 부서져서였겠지요. 며칠 뒤 남편은 조용히 손을 잡고 제게 말했습니다. “이제 글 그만 쓸게요. 당신 고생하는 것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어요.” 듣는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남편에게 힘을 줄 방법이 없을까 기도했죠.

무슨 용기가 생겨서였을까요.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사연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9일 한 자 한 자, 기도하는 마음으로 남편 몰래 컴퓨터 자판을 쳐 나갔습니다.

‘만약, 제가 이 글을 올린 것을 알면 남편은 분을 참지 못할 것입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간곡히 도움을 청합니다. (중략) 가난한, 무능한 작가를 아버지로 둔 아이들에게 저희는 죄진 자, 빚진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열심히 살던 제게 아주 큰 걱정이 생겼습니다. 남편이 작가로서의 생활을 포기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 그건 죽음이나 다름없습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애원합니다. 가난해서 서러웠고, 무명이어서 서러웠던 제 남편을 도와주십시오. 돈을 벌게 해 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제 남편이 글 쓰는 일을 접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워주세요. 송구하고 쑥스럽지만 감히 부탁드립니다. -어느 무명작가의 아내 올림’

그 남자의 이야기

부채의식. 제 아내에게 가지는 감정입니다. 몹쓸 짓 하고 있다는 거, 잘 압니다. 환갑을 4년 앞둔 지금까지 무능한 무명작가로 살아온 유경한이라는 사람을 그토록 사랑해주는 아내. 어떻게 은혜를 갚을까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제가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몇 안 됩니다. 백화점에서 적은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아내가 힘을 내도록 웃음을 주는 것 말고는 말이죠.

아내는 일을 마치면 경기도 부천 송내역에서 좌석버스를 탑니다. 얼마나 힘이 들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인천 소래포구 앞 정류장. 버스가 올 때마다 버스 뒷문을 살핍니다. “오늘은 늦으니까 집에 계세요.” 아내는 배려심이 깊습니다. 하지만 마중 나가는 게 가장 기쁜 일이라 양보할 수 없습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날이 추우면 겉옷을 들고 나가 아내의 손을 잡고 집에 오며 이야기를 나누죠.

집에 돌아와서는 오랜 시간 서 있느라 부어 있는 아내의 다리를 정성껏 주물러 주곤 합니다. 하루는 아내가 웃으며 “여보, 전 하지정맥류 질환 걱정 안 해요. 당신 덕분에”라고 말해주더군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얼마 없어 미안할 따름인데 그걸 고마워하는 아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요.

아내가 우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을 땐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불러 줍니다. 결혼 전 음반을 내고 밴드 활동을 한 게 다행스러운 건 제 노래를 들으며 미소 짓는 아내 얼굴을 보는 그때 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것뿐입니다. 그래서 이번 글은 구상단계에서부터 더욱더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고생만 한 아내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사주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시작부터 삐걱거리더군요. 집사람 마음 아플까봐 이제야 말하지만 사실 출판사 문을 50군데나 두드렸거든요. 대부분 출판사는 연락조차 없었어요. 한두 군데는 “성향이 맞지 않는다”며 완곡하게 거절했습니다. 이해합니다. 전 무명이니까요. 아무리 좋은 글을 써도 서점에서 사람들 손에 들리기는 쉽지 않다는 거 압니다. 그렇대도 착잡한 마음은 감출 수 없더군요.

그 순간 하나님께서 실낱같은 줄 하나를 내려주셨습니다. 전작을 만든 출판사에서 한번 더 저를 믿기로 한 거죠. 제 원고를 귀하게 여겨준 것만으로 감사했습니다. 영세한 출판사와 무명작가의 조합. 어렵지만 좋은 책 만들어 보자며 의기투합했습니다. 아내, 그리고 저를 믿어준 출판사에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작품에 매달렸죠. 오른팔에 마비가 오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겨냈습니다. ‘겨리’가 나오던 날 서울 강남과 광화문에 있는 대형 서점을 돌고 또 돌았습니다.

신이 났죠. 몇몇이 제 책을 들고 책장을 넘겼거든요. ‘제가 쓴 책이에요’라 말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서점으로 출근하다시피 했어요. 아내가 쥐어주는 용돈 만원은 제가 쓴 책을 사는 데 썼습니다. 밥을 못 먹었지만 전혀 배고프지 않았어요. 배고플 겨를조차 없었다는 게 맞겠군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 책을 찾아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구석에 놓여 있던 책을 잘 보이는 곳으로 몰래 가져다 놓는 것도 한두 번이죠. 결국 이번에도 ‘고개 숙인 남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민 끝에 아내에게 말한 겁니다. “여보, 이제 글 그만 쓸게요.”

상상 못한 기적

아내가 입을 열었다. “당신 몰래 인터넷에 우리 얘기를 올렸어요. 미리 말하지 못해 미안해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올린 그녀의 글은 온라인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네티즌은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출판사가 지난 10일 아침 일찍 유씨를 찾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20만여명이 아내의 글을 읽었고 1000명 넘게 댓글을 달았다. “힘내세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등 애정 어린 댓글로 아고라는 도배됐다. 감사한 마음, 글을 쓰지 않겠다고 말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뒤엉켜 유씨의 눈은 촉촉해졌다.

“네티즌은 무서운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고마울 수가….”

11일 금요철야예배. 부부는 기쁨의 기도를 올렸다. 참 오랜만이었다. 유씨는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로 부르짖기 시작했다. “큰 용기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글로 얻은 수익이 아무리 적다할지라도 십일조를 내겠다는 제 소망을 이뤄 주십시오.”

이후 책 주문이 쇄도했다. 유씨의 신작 ‘겨리’를 펴낸 한솜미디어는 14일 2쇄에 돌입했다. 최초의 2쇄였다.

■유경한(56)

경북 안동 출생. 젊은 시절 음악을 좋아해 ‘잊을 수 없는 경아’ 외 음반을 다수 취입했다. 계간 ‘세기문학’ 단편소설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한 후 전업작가로 살아왔다. 장편소설 ‘사랑은 그들을 노예라 불렀다’ ‘달덫’ ‘교사는 아프면서 간다’ ‘겨리’ 등 출간.

■김윤금(51)

전남 강진 출생. 소설가 유경한과 결혼해 슬하에 2남을 두었다. 인천 논현주안장로교회 출석. 백화점, 대형마트 등 판매원으로 근무하며 가족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다. 최근 ‘다음’ 아고라에 생활고로 인해 남편이 절필하지 않도록 호소하는 글을 써 화제가 됐다.

글 조국현 기자·사진 이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