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아의 행복 스케치] 웃음으로 암을 극복하다
입력 2011-03-16 18:05
얼마 전에, IT의 천재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산다는 내용의 뉴스가 세계 언론의 이슈가 되었다. 많은 사람은 카메라에 포착된 그의 불안한 거동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나는 그의 초췌한 뒷모습을 본 순간 울컥한 것이 올라왔다. 불과 몇 달 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의 듬성듬성한 머리숱은 병석에 누워있음으로 납작해져 더욱 초라해보였다. 중병을 앓아 본 사람은 그의 모습을 보고 모두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으리라.
작년 초, 내 몸에서 멍울이 몇 개 잡히는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 나는 누구보다도 건강하게 살아왔기에 양성이겠거니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조직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검사 결과를 알아보러 가는 날도 나는 별로 불안해하지 않았다.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갔다. 담당 의사는 굳은 표정을 지은 채 한동안 말없이 컴퓨터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밝은 표정과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박사님, 표정이 왜 그렇게 심각하세요?”
“…심각하니까요. 혈액암입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암은 남들은 걸릴 수 있어도 나만은 절대로 안 걸릴 줄 알았으니까. 나는 진료실에서 나오자마자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냈다. 죽음을 맞이하는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병원을 나오며 사무실 직원에게 전화하여 잡혀있는 일정 모두를 취소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침대에 누웠다.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벅차 잠이라도 청했건만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 세상만사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관일진데 주님은 왜 내게 암을 허락하셨을까. 기독교의 미덕인 순종을 떠올렸다. 어차피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고난은 축복이다’라는 진리의 말씀을 실제로 적용하려니 버거웠다.
나는 그럼에도 고난의 최고 선구자인 욥을 애써 떠올리며 스스로 위안했다. 나를 진정한 ‘표정 전도사’로 쓰시기 위해, 육체적으로 고통 받는 영혼들에게 행복한 미소로 전도하라는 미션을 주시기 위한 과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식탁에 앉아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나의 발병으로 침통해 하던 가족은 예상치 못한 나의 태도에 내 눈치를 슬금슬금 봤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평강의 은혜가 아니고선 불가능했으리라.
며칠이 지난 후, 나는 골수검사를 통해 최종 혈액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의사로부터 4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절망감이 스쳤지만 이내 무덤덤해졌다. 오히려 남편이 의사 앞에서 울었다(안타깝게도 남편은 아직 세례도 못 받았다). 나는 좀 더 빨리 암을 발견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했지만 현실을 피할 순 없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항암 주사(6차)를 견뎌내야 했다. 몸속 백혈구가 파괴되어 때때로 숨이 헉헉 찼다. 손이 저리고 살갗이 다 아팠다. 손가락 끝의 통증으로 휴대전화 문자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고난의 터널은 유난히도 무덥고 길었던 여름날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런데 내겐 무엇보다도 육체적 고통만큼이나 참기 어려운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내 직업병인 ‘매력 강박증’이었다. 항암치료에 따른 부작용으로 갸름했던 내 얼굴은 퉁퉁 부어올랐다. 샴푸할 때 머리카락이 두 주먹 빠지는 바람에 너무 놀라서 펑펑 울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긴 생머리를 갓난이 머리처럼 싹둑 잘랐다. 외모의 변화는 한 여자로서도, 외모를 연구하는 전문인으로서도 참기 힘들었다. 하지만 참 감사한 것은 투병 중에도 내 밝은 표정과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미국에 사는 친구가 나를 만나고 난 후 “암 환자인 너의 표정은 밝고 건강한데 어떻게 정상인인 내 표정이 암 환자 같니”라고 말해 둘이서 크게 웃었다.
내 소식을 아는 지인들은 내게 안부 전화를 걸어올 때마다 “어쩜 목소리가 그렇게 밝으냐”면서 암 환자인 나로 인해 되레 은혜 받았다고 한다. 사실 나는 나의 가족에게 짜증과 분노를 터뜨리기도 했지만 투병 중에 많이 웃기도 했다. 비록 허허로운 웃음이었을지라도 컴퓨터단층촬영(CT)검사 결과 내 몸의 암 덩어리는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항암제는 점점 약하게 들어갔고 머리카락도 더 이상 빠지지 않았다. 6차 치료가 끝나자 의사는 의학적으로는 완치되었다고 했다. 현재 나의 외모 또한 거의 회복되었다. 믿음 안에서 절대 긍정의 힘이 치유케 해준 것이다.
정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