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호경] 일본 대지진, 88년전과 오늘

입력 2011-03-16 17:54


어느 해 가을,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사망자 및 실종자 10만여명, 전파 건물 12만8000동, 전소 건물 44만7000동이라는 미증유의 재난이었다. 도쿄, 요코하마를 비롯한 도시에서는 지진 후에 발생한 화재 때문에 피해가 더욱 컸다.

비상상황에서 경찰은 민심을 안정시킬 방책을 만들어야 했다. 그 일환으로 재일 조선인들을 위험분자, 불온분자로 간주하고 무차별 체포했다. 일본인 민간인들로 구성된 자경단(自警團)도 가세했다. 경찰과 자경단은 “조선인들을 놔두면 우물에 독을 넣거나 방화를 한다. 살인도 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시민들에게 선전하며 돌아다녔다.

이들은 마침내 유언비어를 근거로 무차별적 학살에 나섰다. 외관상으로는 일본인과 구분이 되지 않는 조선인을 식별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고안했다. 예컨대 조선인은 일본어의 촉음을 잘 발음하지 못한다하고 해서 마을 입구 등에 새끼줄을 치고 통행인을 정지시킨 뒤 ‘쥬고엔 고짓센(十五円五十錢)’이라고 말해 보게 했다. 어리둥절해하는 조선인이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면 바로 끌고 갔다. 역대 일왕의 이름이나 교육칙어를 암송케 하고 기미가요를 불러 보라고 시키기도 했다. 졸지에 생사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조선인은 죽창이나 일본도 등으로 처형됐다. 이성적으로 사태를 진정시켜야 할 신문 같은 매체마저 조선인이 총기와 폭탄을 지니고 군대와 싸운다는 엉터리 기사를 보도함으로써 유혈사태를 부추겼다. 그렇게 해서 6000명 이상의 조선인이 일본 땅에서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1923년 9월 일어난 간토(關東) 대지진 때의 일이다. 88년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나 이번에 발생한 도호쿠(東北) 대지진을 접하며 기자의 머릿속에 옛 대지진 때의 참극이 자꾸 떠오른다. 일본에서 발생한 막대한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심정과는 별개로, 또 다른 안타까움이 엄습하는 것이다. 현재 일본 정부와 국민, 언론 등이 매우 이성적이고 의연한 태도로 재난에 대처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할수록 더욱 그렇다. 왜 88년 전의 시공간 속에서는 지금과 전혀 다른 광기가 지배하고 있었던 것일까.

기자는 지난해 특별기획팀 소속으로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잊혀진 만행…일본 전범기업을 추적한다’ 시리즈를 연재하며 일제시기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했었다. 간토 대지진 당시 일본에 있던 조선인 8만여명은 본격적인 강제동원 시기의 피해자는 아니더라도 결국 일제의 식민지 수탈을 견디다 못해 일본 본토로 건너갔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다른 조선인 피해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간토 대지진 학살 사건에 대해서도 사죄하거나 진상조사를 벌인 적이 없다. 일본은 늘 그랬다.

하지만 기자는 요즘 어떤 희망을 생각한다. 역사는 자주 인간의 사고범위를 초월해 신의 섭리 속에 기적을 이루곤 한다. 현재 우리 정부와 정치권, 국민들은 일본이 처한 국가적 어려움에 진심으로 동정과 슬픔을 표시하며 유·무형의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고 있다. 일본 측도 깊은 감사를 표하고 있다.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이 같은 거대한 공감과 연대가 튼튼한 고리를 형성해 양국이 명실상부한 ‘이웃’으로 거듭나면 과거사의 모든 묵은 문제도 단시일 내 해결될지 모른다. 물꼬를 트는 계기라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친 낙관이고 감상일까. 일제시기 대표적 피해자들의 단체라고 할 수 있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며칠 전 발표한 감동적인 성명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한다.

“우리는 단순한 민족감정의 시각을 넘어서고자 합니다. 오히려 과거 한 많은 역사와 아픔을 간직하고 있기에 생명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늘 아래 다 같은 생명이며, 형제입니다. 다시 한번 이번 대지진 사태에 대해 심심한 애도와 위로를 표합니다.”

일본의 아픔과 한국의 공감이 큰 연대감으로 승화해 역사의 발전을 이뤄내길 꿈꿔본다.

김호경 정치부 차장 hk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