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박현동] 정운찬과 이건희

입력 2011-03-16 22:22


“찬반논쟁은 바람직하지만 이데올로기·정치가 과하게 개입하면 누더기 된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爲政篇)에서 “나이 예순이면 귀가 순해져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듣기만 해도 그 이치를 깨닫게 된다”고 했다. 창조주가 귀와 눈을 두개 만들고 입을 한개 만든 것도 두루 듣고 보되, 말은 신중히 하라는 뜻일 게다. 나이가 들수록 인격은 말에서 나온다는 경구도 마찬가지다. 나이 예순에 귀가 순해지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마는 초과이익공유제(profit sharing)를 둘러싼 말들은 너무 험악하고 듣기 거북하다. 그 논쟁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학계와 재계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분들이다. 그러하기에 실망은 더 크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경제학자다.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면 그가 저술한 책 한권 정도는 읽었을 정도로 학자로서 명성도 쌓았다. 국무총리를 지냈고, 한 때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작년 12월에는 반관반민 성격이 짙은 동반성장위원장을 맡았다. 이런 이력의 그가 초과이익공유제가 초래할 파장을 과연 몰랐을까? 몰랐다면 무지하고, 알고 그랬다면 너무 정치적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무게도 정 위원장 못지않다. 그는 우리나라 대표적 기업가로,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인물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어느 순간부터 정부의 경제정책에서 포퓰리즘을 느꼈을 수 있다. 재계 내에서도 이런 기류가 분명 존재한다. 설사 정 위원장의 주장이 논리에 맞지 않다 하더라도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자본주의 용어인지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공박한 것은 도가 지나쳤다.

이 회장은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낙제점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정부로서는 서운할지 모르나 틀린 진단은 아니다. 물가와 전세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고, ‘살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렇더라도 이 회장이 잘한 것은 아니다. 의사전달은 명백히 했을 지라도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들었다. ‘어’ 다르고 ‘아’ 다르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 위원장의 대응 역시 품위가 없다. 그는 “색깔론이나 이념의 잣대로 매도하지 말라”라고 했다. 이런 식의 대응도 색깔론만 부추길 뿐이다(어쩌면 그의 속내일지는 모르지만). 일부 언론은 정 위원장이 정색을 하고 반론을 제기한 것은 이 문제를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정 위원장은 이번 논쟁을 통해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한다는 이미지를 강화했다. 정치적으로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더욱이 최근 정치 일정의 중심에 있는 그다. 오해를 살만하다. 억울하다 할지 모르나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맨 셈이다. 어찌됐던 우리는 신문에서, TV에서 그의 이름을 자주 보고 듣게 될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다양성은 존중받아야 한다.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정책을 놓고 찬반 논란이 전개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합의를 이끌어 내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이데올로기나 정치가 과도하게 개입되면 정책은 누더기가 된다. 정 위원장이나 이 회장 모두 이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왕 말을 꺼낸 김에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자.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도 동반성장은 매우 중요하다. 정당성도 있다. 이는 경제 문제를 넘어 정치·사회적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초과이익공유제가 그 답은 아닌 것 같다. 우선 초과이익의 개념도 불분명하고 산정 자체도 쉽지 않다. 이익은 경영의 결과다. 나아가 1·2·3차 등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수많은 협력업체들과 이익을 공유하는 것은 더 어렵다. 취지는 옳지만 방법론에서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경제행위의 결과인 이익과 손실에 대해 간섭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근간을 위협할 수 있다. 결과의 평등성을 강요하는 것 또한 위험하다. 성취동기를 위축시킬 수 있고, 책임경영에도 반(反)한다. 과정의 평등성, 기회의 평등성을 보장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이것이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온 공정사회의 밑거름이자 동반성장의 시작이 아닐까?

박현동 편집국 부국장 hd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