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탁석산의 스포츠 이야기] 김연아, 공백 길면 팬이 멀어진다

입력 2011-03-16 17:37


동일본 대지진으로 세계피겨선수권대회가 연기됐다.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생각되나 1년 동안 이 대회를 준비해왔던 김연아 선수는 당황할 것 같다. 라이벌인 아사다 마오, 안도 미키 등은 그랑프리 시리즈, 그랑프리 파이널, 그리고 4대륙선수권 대회 등에 참가해 왔기에 아쉽기는 하겠지만 미련은 없을 것이다. 반면 김연아는 준비했던 것을 한 번도 선보이지 못하고 한 시즌을 그대로 보내게 됐기에 허망하지 않을까. 선수권이 아예 취소될 가능성도 있고 그랑프리 시리즈도 10월이 돼야 시작되기 때문에 현역 공백이 길어지게 돼 리듬을 유지하지도 힘들 것이다.

왜 김연아는 1년 동안 대회에 나오지 않았을까? 선수는 보통 부상으로 인해 시합에 나오지 못한다. 미국 LA에서 새로운 코치를 영입해 맹훈련 중이라고 했으니 부상은 아니다. 그렇다고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가장 권위 있는 세계선수권에만 나가기로 한 것이 아닐까. 대회 참가는 전적으로 선수의 선택이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좀 더 자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주 볼 수 없으면 선수와 팬 사이가 멀어져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느낌을 주게 된다. 선수가 실패하더라도 그 자체가 의사소통의 훌륭한 계기가 된다. 팬들은 더욱 더 응원할 것이다. 그리고 기다릴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팬들과 활발히 만나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이봉주는 황영조에 비해 화려함에서 떨어진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은메달을 땄지만 금메달에 가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봉주는 거의 20년을 달렸다. 보스턴 마라톤대회 우승을 비롯해 많은 우승 기록이 있지만 그의 올림픽 기록을 보면 2위, 24위, 14위, 28위이다. 네 번씩이나 출전한 것도 놀랍지만 뛰어나지 않은 성적이 아님에도 계속 출전했다는 것이 더 존경스럽다. 그는 자신이 달릴 수 있는 한 달렸다. 대회를 가리지 않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많은 대회에 참가해 좌절도 많이 했다. 하지만 피하지 않았다. 좌절을 딛고 다시 달렸다. 스포츠정신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승리하는 모습만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난관을 피하지 않고 헤쳐 나아갔다.

김연아는 지금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고 있다. 출중한 기량과 환한 미소가 요정을 연상케 하기에 이런 별명이 붙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봉주의 별명은 봉달이다. 그런데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봉달이 앞에는 드러나지는 않지만 정서적으로 ‘우리의’가 붙는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국민 여동생’은 아직 생소하지만 ‘우리의 봉달이’는 친근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팬과 좀 더 자주 만나서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탁석산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