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리비아 사태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

입력 2011-03-16 17:36

불길처럼 번진 반독재 시위로 금방이라도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를 몰아낼 것 같았던 리비아의 상황이 한 달 만에 급전직하했다. 한때 리비아 전체의 80%까지 장악했던 반정부 시위대는 전투기 등 압도적인 화력으로 무장한 카다피군의 맹공에 밀려 현재 동부 거점도시 벵가지를 포함한 극히 적은 지역만 겨우 지키고 있다. 그나마 15일에는 벵가지의 관문인 아즈다비야마저 카다피군에 빼앗겼다. 기세등등해진 카다피는 “항복 안 하면 전원 사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만약 카다피가 벵가지마저 탈환하고 반정부 시위대를 완전히 진압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불문가지다.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 이슬람이 위협한 대로 ‘피의 강’이 흐를 게 뻔하다. 내전에서 정부군이 승리한 뒤 반군 80만명을 죽인 ‘르완다식 학살’이 자행될 것이라는 참담한 전망도 나왔다. 전투기까지 동원해 시위대를 가차 없이 죽이고 있는 카다피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세계는 이런 참혹한 일이 일어나도록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

무엇보다 카다피군의 전투기를 묶어놓을 수 있도록 비행금지구역 설정부터 당장 해야 한다. 유엔 안보리도, G8 회의도 경제적 이권 확보 등 각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지만 리비아 사태를 지금처럼 방치한다면 반드시 후회할 게 분명하다. 눈앞에 보이는 대학살 말고도 카다피가 승리할 때 가능한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자.

우선 카다피는 포기했던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재개발하려 시도할 수 있다. 한번 쓴맛을 본 카다피로서는 무슨 수를 쓰든 권력을 유지하려 할 것이고, 이때 WMD만큼 유혹적인 카드는 없다. 이 경우 국제사회의 핵 확산 저지 노력은 물 건너가게 된다. 또 이제 겨우 싹을 틔우기 시작한 중동·아랍권의 민주화 도미노가 역풍을 맞아 제대로 꽃도 피우지 못한 채 시들어버릴 수 있다.

국제사회는 ‘카다피의 석유에 취해 세계가 잠자고 있다’는 반카다피 측 인사의 절규를 못 들은 척 더 이상 시간만 허비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