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최승욱 기자, 센다이 소학교 피난소 르포… 빵 한조각·물 한컵이 한끼
입력 2011-03-15 23:03
일본 센다이(仙臺)시 아오바(靑葉)구에선 15일 새벽부터 부슬비가 내렸다. 택시를 잡는 데만 20분이 걸렸다. 한 택시기사는 “(LPG)가스가 없어 1㎞밖에 운행하지 못한다”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20분 만에 탄 택시의 기사는 “가스가 없어 택시가 운행하지 못하는 사태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며 “나라가 망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진 발생 닷새째. 센다이시는 모든 도시 기능이 멈춘 상태로 다시 새로운 하루를 맞았다.
피난소가 마련된 센다이시 미야기노(宮城野)구 사이와이초 미나미 소학교(초등학교)에는 인근 주민 800여명이 피난민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오전 10시30분 ‘지진의 영향으로 18일까지 임시휴교’ 안내문이 붙은 정문을 지났더니 피난소가 설치된 체육관이 나왔다. 네 구역으로 나뉜 체육관 안은 고요했다. 비가 내린 탓인지 바깥보다 한기는 더 심했다.
한국의 중학교 체육관 규모의 피난소에서 주민 300여명이 담요를 덮은 채 한기를 견뎌내고 있었다. 대부분 누운 채 억지로 잠을 청하는 주민들에게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재해가 뭔지 모르는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아이들이 뛰면서 내는 발소리만이 체육관의 빈 공간을 채웠다. 인기척을 느끼기 힘들 정도의 적막이 오히려 더 불안스러웠다.
체육관엔 더 이상 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이불이 놓여 있었다. 급하게 집을 빠져나온 이재민들은 대부분 운동복 차림이었고 슬리퍼를 신고 있는 이도 있었다. 건전지를 구하지 못해 자가발전형 라디오로 뉴스를 듣는 가족도 눈에 띄었다.
식사는 하루 두 번 제공된다. 가로·세로 10㎝, 두께 3㎝의 식빵과 200㎖ 물 한 컵이 한 끼 식사다. 그 흔한 딸기잼도, 넘쳐나던 버터도 없다. 난방은 등유 난로 7개로 해결한다. 그나마 새벽 시간대에만 잠시 켤 뿐이다. 인근 석유공장이 폭발해 전국에 기름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임시휴직 상태가 된 센다이 이재민들은 낮에 3∼4시간씩을 기다려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생수 과자 등 최소한의 물품을 구해온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면 체육관은 더 붐빈다. 많을 때는 900명이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잠을 청한다고 한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공간은 약 1㎡(0.3평) 정도다. 살을 맞댈 만큼 비좁은 공간에서 서로의 체온으로 한밤의 추위를 이겨내고 있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이재민들은 모두 침착하게 대처하고 있다. 식사 시간엔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 더 달라는 이가 없다. 피난소 운영본부를 찾아와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주민도 없다. 이재민들은 완전히 침수되지 않은 집에서는 여분의 담요를 가져왔고, 몇 시간을 기다려 구한 난방용 등유를 공용 난로에 넣었다. 지병을 앓고 있는 노인의 머리맡에 자신의 담요를 말아 넣어주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이재민들의 눈에서 생기를 찾아보긴 힘들었다.
이들은 “물과 음식이 가장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약이 없어 고생하는 주민도 있다. 시영주택에서 지진 피해를 입은 오이카와 히데카즈(62)씨는 “당뇨약을 가져와야 하는데 집에 들어갈 수 없다. 출입문이 (지진으로)어긋나 문을 열 수 없다”고 말했다. 네 살 난 아들에게 신문 기사를 설명하던 나카무라 미키(25·여)씨는 “피난소 생활이 힘들지만 아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적어도 한 달은 이렇게 살아야 할 텐데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피난소 운영본부에서 일하는 사이와이초미나미 소학교 스토 히로시(48) 교감은 “시청과 구청 등 관공서는 물론 학교까지 나서서 식음료를 공급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면서 “먹을 것과 마실 것, 석유가 가장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아이들의 교육을 걱정하는 스토 교감은 “18일까지 휴교한 뒤 22일부터 봄학기를 시작할 예정”이라며 “그때까지 정상화되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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