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비전문가들이 시공·관리 日 원전 행정 허술했다”… 원전 20년 근무 일본인 폭로
입력 2011-03-15 18:27
20년간 원자력발전소에서 배관공으로 일한 일본인이 1996년 자국 원전의 구조적 문제점을 폭로하면서 지진으로 인한 사고 가능성을 예견한 글이 국내 온라인상에서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97년 사망한 히라이 노리오씨가 쓴 글로, 우리나라에선 2005년 환경단체 회원이 홈페이지에 처음 번역본을 올렸고 6년이 지난 지금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를 맞아 포털 게시판과 트위터 등으로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히라이씨는 이 글에서 “95년 1월 한신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국민 사이에서 ‘지진으로 원전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높아졌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로 괜찮을 리 없다”고 단언했다.
또 87년 후쿠시마 원전과 93년 오나가와 원전이 지진으로 오작동을 일으켜 멈춘 사례를 들어 지진으로 인한 원전 사고가 상당히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한신 대지진 이후 일본 정부는 모든 원전의 내진설계를 재점검한 결과 “어떤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괜찮다”고 발표했지만 히라이씨는 “내가 관여한 초기 원전에선 지진에 관한 설계상의 진지한 고려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 정부나 전력회사는 원전이 내진설계를 하고 단단한 암반 위에 지어져 안전하다고 강조하지만 실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했다. 일본 원전은 설계 단계까지는 우수하지만 시공과 관리에 소홀해 이상이 생긴다는 게 히라이씨의 주장이다. 그는 “현장에 전문기술자가 줄고 비전문가들이 많아져 어떤 것이 하자인지도 모르고 작업을 하는 게 지금 원전의 현실”이라며 “예를 들면 후쿠시마 원전은 원자로에 철사를 빠뜨린 채 운전하고 있어 조금만 잘못해도 세계를 휩쓸 대형 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를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전날까지 양봉이나 치어 양식을 지도하던 공무원들이 원전 운전관리를 담당하는 등 일본의 원전 행정은 무책임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엔 히라이씨 사후인 2002년 운영사 도쿄전력이 원자로 점검기록을 허위로 기재하고 균열 등의 문제점을 은폐한 사실이 드러나 경영진이 대거 사퇴하는 등 여러 차례 스캔들에 휘말렸다.
히라이씨는 “나는 내부피폭(신체 내부가 방사능에 노출되는 것)을 100회 이상 당해 암 선고를 받았다”면서 “20년간 일하며 체험한 것은 원전이 일하는 사람을 피폭시키지 않고선 절대로 일할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히라이씨의 글은 국내 네티즌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 게재되자 “너무 무섭네요. 결국 일본 정부가 여태껏 거짓말을 해온 것이네요” “우리나라에도 원전이 있는데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우리나라 원전은 정부 말대로 정말 안전한 건가”라는 댓글이 달렸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