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김민회 기자, 센다이 시내 르포… 비 오자 ‘방사능 공포’ 증폭 모든 거리에서 인적 끊겨

입력 2011-03-15 22:55

부슬비가 내린 15일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臺)는 침묵의 도시였다. 간혹 센다이 공기를 가르는 119 구조대 사이렌 소리는 죽음처럼 다가왔다. 수시로 발생하는 여진 때문에 3∼4분간 건물이 흔들렸고, 현기증 때문에 구토마저 나려고 했다. 이미 많은 시민이 센다이를 ‘탈출’했고 남은 사람들도 떠날 채비를 했다. 오전 8시쯤 미야기현 청사 앞 버스정류장에선 주민 수백명이 줄을 지어 인근 야마가타(山形)행 시외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고층 건물 사이로 오가던 차량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시민들은 표정이 없었다. 마치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정적이 도시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이틀 후에는 큰 여진이 다시 올 것이라는 방송 보도에 침묵의 도시는 점차 공포의 도시로 변해갔다. 오전만 하더라도 센다이 중심가 히로세 도오리 거리엔 자전거를 탄 시민들이 페달을 열심히 밟으며 출근길을 재촉했으나 오후 들어 빗방울이 굵어지자 시내엔 인적이 끊겼다. 후쿠시마 원전 2, 4호기마저 폭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방사성 물질이 비와 함께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모두 거리에서 사라진 것이다. 센다이 당국도 오후 12시30분쯤 “방사능 낙진이 우려되니 모두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고 안내방송을 했다.

먹을 것도 부족했다. 마실 물도 모자랐다. 생수도 정확하게 먹을 양만큼 나눠준다. 생필품을 판다는 소식에 센다이 중심가에 있는 다이에이 슈퍼 앞에는 대형 가방을 든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섰다. 그러나 물건은 턱없이 부족했고 금방 동이 났다. 3시간 넘게 기다렸는데도 허탕을 친 시민들은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주유소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서너 시간 기다렸다가 간신히 5ℓ의 연료를 채운 운전자들은 “아리가토 고자이마스(고맙습니다)”를 잊지 않았다.

구호단체들은 이재민에게 나눠 줄 생필품 운송 차량을 확보할 수 없어 안타까워했다. 문을 닫은 화장실도 많다. 센다이에서 가장 큰 국제호텔도 문을 닫았다. 구호단체 관계자는 “모든 게 멈춰 섰다”고 말했다. 일본 당국은 구호물자를 개별적으로 나눠주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공평하게 지급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들은 정부를 원망하거나 불평을 하지 않았다. 새치기도 없었다. 줄지어 마냥 기다렸다. 택시기사 이와사키 에이치(63)씨는 “나만을 위해서 남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지 않느냐. 우리는 정부를 믿는다”고 말했다.

다시 밤이 찾아 왔다. 거리엔 사람도 차도 보이지 않았다. 도시는 깊은 어둠에 빠졌다. 공포가 도시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마치 사람이 살지 않은 곳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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