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주유소 앞 400~500m 행렬… 마트에선 3~4시간 줄”
입력 2011-03-15 22:48
입국한 교민·유학생들이 전한 악몽의 순간
15일 낮 12시쯤 동일본 대지진의 참혹함을 목격한 센다이(仙臺) 지역 교민과 유학생 80여명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이 전한 현지 상황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참혹했다.
입국장에 나타난 교민과 유학생 등은 급하게 빠져나온 듯 청바지와 티셔츠 등 간편한 옷차림이었다. 양손에 짐을 들고 등에 아이를 업어 마치 피난민 같은 교민들도 눈에 띄었다.
지친 기색으로 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온 이들은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가족을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준서(9)군은 입국한 아빠를 보자 “걱정 많이 했다. 너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탈출 과정’은 험난했다. 도호쿠(東北) 대학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는 유창호(34)씨는 “지진으로 연구실의 실험기구와 기자재가 다 망가져 교수들이 귀국을 권유할 정도였다”며 “센다이공항이 폐쇄돼 연구원 동료 3명과 택시와 버스를 수차례 갈아타며 겨우 니가타(新潟)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내, 아들 둘과 센다이에 2년째 체류하며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서문식(41)씨는 주유소를 전전하며 연료를 구한 후 니가타로 승용차를 몰고 가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서씨는 “승용차로 탈출을 시도했는데 주유소에서 차 1대에 연료를 20ℓ씩만 채워줘 이곳저곳을 전전했다”며 “이틀이나 걸려 차에 연료를 가득 채우고서야 니가타로 이동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교민들이 전한 일본 상황은 처참했다. 생후 10개월 된 아이와 장모, 아내와 함께 들어온 전진원(30)씨는 “세미나 발표 중 건물이 강하게 흔들렸다”며 “전기와 물 공급이 완전히 끊겨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센다이에서 2년째 대학 강의를 하고 있는 이강욱(43)씨는 “주유소에서 400∼500m씩 줄을 서야 겨우 기름을 받을 수 있었다”며 “현재 센다이는 모든 물자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 교민은 “대피해 있던 학교에서도 식량이 부족해 하루 두 끼만 배급이 됐다”며 “낮에는 사람들이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3∼4시간씩 줄을 서 물과 컵라면 등을 샀다”고 설명했다. 김인혜(34)씨는 “아이들이 지진 때문에 많이 놀라 계속 토하고 열도 났다”며 “한국으로 오지 못한 친구 중에는 아이에게 먹일 분유도 사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교민 대부분이 한국에 돌아오려 하지만 여건이 안돼 그러지 못하고 있다”며 “먼저 왔다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교민들이 머물렀던 센다이 지역은 원자력발전소 4기가 폭발한 후쿠시마(福島) 지역에서 불과 80㎞ 떨어져 있다. 방사성 오염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었지만 입국자에 대한 방사능 검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인천공항 검역소 관계자는 “현재 방사능 물질을 검사할 수 있는 장비가 없다”며 “해당 업무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맡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공항=이용상 김미나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