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출판] 질곡의 현대사 ‘씨알의 소리’로 민중 대변… ‘함석헌 평전’
입력 2011-03-15 18:16
함석헌 평전/김성수 지음/삼인
함석헌(1901∼1989·사진)은 ‘자유로운 씨알’이었다. 씨알은 민(民) 또는 민중(民衆)에 대한 순수 우리말로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사람을 의미한다.
저자는 함석헌이 이해하기 쉬운 말과 글로 생각을 대중에게 전했다는 점에서, 대중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 곧 ‘씨알의 소리’였다고 회고한다. “혼미한 시대의 한반도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조용한 정원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자신의 삶을 술회한 함석헌은 결코 높지 않은 소리로 자신과 그리고 세상의 씨알들과 대화하려고 했다.”
책은 함석헌의 격동의 인생여정과 사상을 총괄적으로 다뤘다. 먼저 20세기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운동의 기수로서 역할과 혁신적인 그의 종교관을 분석했다. 특히 그가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좀 더 인도주의와 보편주의를 강조한 기독인으로 어떻게 변모했는지 조명했다.
또 함석헌이 살고 고민한 시대의 역사와 철학적 배경을 다루고, 그가 일생을 통해 특별히 영향을 받은 인물과 사상을 살폈다. 현대 동서의 종교와 철학에 대해 어떤 사상적 문화적 공헌을 남겼는지도 진단했다.
함석헌은 종교적 양심을 상실한 사회를 이상향적 사회로 생각할 수 없듯이, 사회의식이 결여된 종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는 1956년 1월 사상계에 기고한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서 윤리의식이나 현실 감각이 없는 종교는 미신적이고 편협한 신앙이라고 지적했다.
저자는 3·1 운동을 통해 기독인으로서 사회참여 의식에 눈을 뜨게 된 함석헌의 영적 완성의 추구와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을 상호연관된 것으로 보았다고 말한다. “그는 절대자 혹은 신을 우주 위의 초월적 존재일 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양심과 자연의 어느 곳에나 내재해 있는 존재로 보았다. 기독교인으로서 함석헌의 공헌은 한국교회의 주된 흐름 속에 상실되어 가던 기독교 본연의 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상상력과 현실비판 정신을 복원시켰다는 것이다.”
또 저자는 함석헌의 민주화 운동과 성서적 연관성을 이야기했다. “신약성경의 공관복음을 살펴볼 때 예수에게는 종교적인 일과 정치적인 일의 구분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함석헌이 종교적인 일과 사회 정치적인 일을 구별하지 않은 것은 지극히 성서적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함석헌을 두고 기독교인이 아니라 종교사상가라고 말한다. 함석헌의 종교적 보편주의에 입각한 기독교관은 정통 보수적인 색채가 짙은 기독교의 입장과 분명 충돌 요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근본주의적 한국 기독교인들 중에서 함석헌을 비기독교인으로 단정하는 경향마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저자는 함석헌을 예수의 정신을 본받아 사회정의나 이타주의에 입각한 삶을 사는 기독교인으로 규정한다. 저자는 함석헌이 1988년 미수(米壽)를 맞아 생일상을 받은 자리에서 ‘내 주님이라면 예수님밖에 더 있나요’라며 공개적으로 기독교인임을 밝혔다며 신앙인이냐 아니냐는 그 사람의 삶 전체의 모습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예수의 주요 관심사는 구약의 율법주의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고 율법학자 바리새인들이 제정한 종교제도나 계율을 지키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 예수의 주요 관심사는 그가 속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죽은 것이었다. 함석헌 역시 예수의 정신을 본받고 그 정신대로 살다 가고자 했다.”
때로는 종교 사상가였고 때로는 인권운동가였으며 때로는 언론인이기도 했던 함석헌은 세상의 변이에 자신을 끊임없이 내맡긴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는 성취한 사람이라기보다는 항시 추구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저자는 “굳이 함석헌 이름 앞에 수식어를 붙이자면 그는 퀘이커교도이며 기독교사상가이다”고 말했다. 책은 2001년 3월 출간된 ‘함석헌 평전’의 개정판으로, 사진을 추가하고 내용을 전면 수정 보완했다.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