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조미자] 간밧테 구다사이
입력 2011-03-15 18:20
지난주 금요일은 전화로 일본어 회화를 배우는 날이었다. 일본에 강한 쓰나미가 와서 그런지 일본어 선생님은 그날 전화가 없었다. 그녀는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다. 다만 월, 수, 금, 일주일에 세 번 전화로 10분간 일본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본 원어민일 뿐이다. 그녀는 늘 경쾌하고 친절한 말로 내가 문법에 틀리게 말하면 맞는 어법으로 고쳐준다. 그러면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따라 한다. 어느새 나의 회화 수준을 알고,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물음을 유도하곤 한다.
오늘은 월요일 정해진 시간, 시계 짧은 바늘은 8자를 넘어서는데 전화가 없다. 선생님의 집이 어디였는지 물어볼 걸 그랬다. 전화가 오면 “큰 지진이 일어나서 안됐어요. 정말로 위로해마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일본어까지 연습해 놨는데. 어쩌면 지금쯤 일본에 두고 온 가족들의 생사가 궁금해 일본 땅으로 가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늦은 나이에 일본어를 배우게 된 것은 두어 가지 이유에서이다. 하나는 대학을 다니다 방황을 하고 군대에 간 아들 녀석 때문이다. 녀석은 도무지 공부에 취미를 붙이지 못하고, 연예인이 되겠다고 오디션을 보며 방송가를 기웃거렸다. 그런 녀석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매일 잔소리를 하고, 녀석은 머리가 컸다고 말대꾸하기 일쑤였다.
늘 부딪치던 녀석이 군대를 갔으니 이건 내 인생에 휴식이고, 황금기라는 생각이었다. 2년여의 귀한 시간을 놓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차, 일본에 있는 한국인학교에 파견갈 수 있는 위치까지 오게 되었다. 문제는 일본어였다. 일본어만 할 줄 알면 재일 학생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어주고, 한국인으로서 긍지를 심어주는 일을 한다는 건 세상에 태어나 해볼 만한 도전이었다.
일본어를 배우면서 일본의 선진 문화와 일본인의 질서 의식에 놀랄 때가 많았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과 남을 배려하는 예의, 친절은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그들만의 자산이라고 보았다. 뉴스에서는 연일 쓰나미가 일어난 후의 일본인들의 침착한 대응을 보도하고 있다.
식수를 배급받는 줄에 서서 몇 시간이고 기다리다 자기 앞에서 물이 떨어져도 한마디 불평하지 않고 이런 일이 계속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차분함을 보이는 사람들. 지진으로 길이 끊어지고 무너진 도로에서도 그들은 파란불이 되면 건너가고, 슈퍼에서는 뒷사람을 위해 꼭 사야 할 물건만을 사고 돌아서는 절제를 보여주고 있다.
나에게 일본어를 가르쳐주던 선생님은 지금쯤 어느 하늘 아래 떠내려간 집터에서 허망해하고 있는지. 아니면 가족들을 부여잡고 울고 있는지, 어쩌면 붙들고 울 가족조차 찾지 못해 눈물로 헤매고 있지는 않은지. 선생님은 여느 날의 월요일처럼 나에게 “모시모시, 스미마셍(여보세요, 있잖아요)” 하면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을 걸어오지 않을까 싶다. 그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선생님, 제 말이 들리나요? 선생님 나라의 힘을 믿습니다. 간밧테 구다사이(힘내세요).
조미자(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