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와우(蝸牛)를 달았다… 희망이 들린다 “와우!”
입력 2011-03-15 18:09
열살 동준이 ‘인공와우’로 두번 태어나다
“눈이 나쁘면 안경 끼잖아요. 귀가 안 좋으면 와우(蝸牛) 하는 거예요!” 동준이(10)가 왼쪽 귀를 만지며 대수롭지 않은 듯 웃는다. 아이의 모습이 대견한 듯 엄마 김영희(41)씨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소리에 반응도 없고, 멀뚱멀뚱 주위만 둘러봐서 이상하다 했죠.” 동준이는 태어나면서 양쪽 귀의 청력을 잃었다. 가족 중에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도 없었다. “태어날 때 양수를 마셔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는데, 전문가 말이 그 때 받은 약물치료 때문에 청력을 잃은 것 같다고…” 동준이의 신생아 건강검진 항목 중 청력검사는 빠져 있었다.
부모는 눈물의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었다. 아이가 소리를 듣는 게 우선이었다. 의사는 인공와우 이식 수술을 권했다. 인공와우는 소리를 들을 때 우리 귀에서 달팽이관 역할을 대신하는 전자의료기기다. 달팽이관 자리에 이식한 전극은 소리가 들리면 체외의 배터리에서 전기에너지를 받아 청각신경을 자극하고 뇌로 소리를 전달한다.
두 살 때인 2005년 동준이는 1년간 다섯 차례에 걸쳐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받았다. 부모는 긍정의 힘을 믿었다. ‘들을 수 있을 거야! 말할 수 있을 거야!’
마지막 수술 후 1년 뒤. “엄마!” 어눌한 발음, 하지만 엄마 김씨에겐 또렷이 들렸다. 동준이가 태어나서 처음 엄마를 부른 날이었다.
아이는 말했고,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아이를 꼭 안아줬다.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한 동준이에 대한 소박한 축하인사였다.
이후 동준이는 청각장애아 특수학교인 ‘구화학교’를 다니며 언어치료를 병행했다. 동준이의 청력, 언어력은 날로 좋아졌다. 하지만 사회성이 부족했다.
“그때는 일반 학교 보내는 게 모험이라고 생각했는데 무던하게 잘 다니는 것 같아요.” 동준이 아빠 오병택(42) 씨는 특수학교를 거쳐 일반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낸 것에 대해 만족감을 나타냈다. 물론 근심도 컸다. ‘인공와우 때문에 놀림이나 따돌림을 당하진 않을까, 다른 아이들보다 학업이 뒤처지진 않을까…’
요즘도 동준이는 종종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놓치곤 한다. 점심시간엔 혼자 교실에서 책을 읽을 때도 많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또래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점차 ‘어울림의 행복’을 알아가는 중이다.
2009년부터 동준이는 인공와우를 이식한 아이들로 구성된 ‘아이소리앙상블’ 합창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노래 실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차츰 연습을 통해 음의 높낮이와 소리의 조화를 익히고 있다. 앙상블 상임지휘자 허양(50) 목사는 “높은 도와 낮은 도도 구별할 수 없던 아이들이 연습을 통해 소리를 구별해 내고 노래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말했다. “와우!” 합창연습 도중 동준이가 해맑게 탄성을 자아낸다. 기적의 소리가 들린다. 동준이를 향해 세상의 문이 열린다.
사진·글=홍해인 기자 hi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