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파도치는 영성
입력 2011-03-15 18:17
각본없는 삶, 후회없게
2004년 인도네시아에서 54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쓰나미를 기억한다. 그런 참사를 내가 당했다면 얼마나 허망할까? 순식간에 가족을 잃고 얼마나 비통함과 시름에 빠져 통곡했을까? 만약에 그 지진과 해일을 막아낼 능력이 있었다면 한 사람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능력이 없어 많은 사람이 죽었고, 또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시에 천재지변을 당했다.
누가복음 18장에도 실로암 망대가 무너지는 비슷한 상황이 있다. 예수님께서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사람이 죽었는데 너희에게는 그럴 가망성이 없는 줄 아느냐. 너희들도 언제든지 그렇게 죽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 살아 있는 동안 잘 살아야 하고, 더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아직 인생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절실하지 못하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떨어진 낙엽이 굴러가듯 세월을 함부로 낭비하고 산다. 육신의 정욕과 세상의 요구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성도들을 보면서 ‘왜 신앙생활에 마음을 쏟지 않고 한눈파는 것일까? 신앙생활에 전념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며 걱정할 때가 많다. 그만큼 마음을 쏟아야 할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목사는 목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신앙생활에 마음을 쏟지만, 평신도가 어떻게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저는 목사이기 때문에 신앙생활에 전념하는 것이 아니다. 목사 이전에 신앙인으로서 신앙생활이 최고의 기업이요 보화인 줄 알고,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기에 전념하는 것이다.
묘지에 가서 무덤을 파 보면 뼈다귀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우리는 썩어 없어질 육신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다.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영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작은 소자 하나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냉수 한 그릇만 떠 주어도 하늘에서 그 상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마 10:42).
우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사건을 연출하는 연출자이자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시나리오 속에서 아름다운 일을 해내는 주님 안에서 최고의 탤런트가 되어야 한다. 요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을 너무나 좋아한다. 하지만 탤런트들이 아무리 예쁘고 연기를 잘해도 진짜를 가진 우리는 가짜를 보고 그렇게 좋아할 필요가 없다.
TV 프로그램이나 영화가 아무리 감동적이라 해도 그것은 각본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내 죄를 회개하는 것이나 주의 일 때문에, 이웃 영혼 때문에 울고 감사하고 충성하고 전도하는 모든 일은 단 한 가지도 가짜가 없다. 영원히 기억될 실제 사건들이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면류관과 함께 영원히 기억될 진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사는 시간은 하나님 나라의 것을 소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런데 이 같은 기회를 허무하게 다 놓쳐 버린다면 나중에 닥칠 후회를 어찌 감당하겠는가. 내 영혼의 때를 위해 사는 것, 이것이 내 목숨보다 큰 것을 위해 사는 것이요, 세월보다 더 큰 가치를 위해 사는 것이다.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