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밖엔 남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국민일보 최승욱 기자, 미나미산리쿠를 가다

입력 2011-03-15 00:30

고요한 산골 마을에 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본 미야기현 모토마시(本吉)군 미나미산리쿠(南三陸) 마을의 14일 오후 2시의 모습이다. 이 마을에 가는데 도로는 군데군데 무너지고 통제가 심해 1시간30분 거리가 3시간이나 걸렸다. 마을 사람들은 지난 11일 지진 발생 15분 만에 높이 16m의 쓰나미가 마을을 덮쳤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 기상 당국이 밝힌 최고 10m 쓰나미보다 규모가 더 컸다는 것이다.

센다이시로부터 북쪽으로 70여㎞ 떨어진 이 작은 산골 마을은 양옆과 마을 뒤편이 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분지형 마을이다. 마을이 들어서지 않았다면 바다를 접한 아름다운 계곡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을에 남아 있는 집들은 대부분 고풍스런 디자인으로 지어진 2층 높이의 기와집이었다. 태평양을 마주한 이 마을은 고급스런 휴양도시였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날 미나미산리쿠엔 쓰레기더미만 눈에 띄었다. 산 중턱 30여 채 가옥을 제외한 모든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자동차도 선박도 가재도구도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게 구겨진 채 마을에 뒹굴었다. 도로엔 가로·세로 3m가 넘는 거대한 콘크리트 방파제 일부가 쓰나미에 떠밀려 왔다.

거대한 쓰나미에 붕괴되지 않은 일부 콘크리트 건물은 포격을 당한 것처럼 구멍이 뚫려 있었다. 철골만 앙상한 채 위태로이 서 있는 건물도 눈에 띄었다. 산을 가로질러 마을 기차역까지 이어졌던 철길과 철마를 태웠을 철재 교각도 엿가락처럼 휜 채 계곡 하천 가운데 처박혔다.

쓰나미가 몰아닥쳤던 당시 상황이 그림처럼 그려졌다. 거대한 쓰나미는 해안의 집부터 한 채씩 차례차례 집어삼켰다. 산 중턱까지 차올랐던 바닷물이 빠지면서 미처 피하지 못한 주민들을 태평양까지 데려갔다. 산의 소나무들은 정수기 필터처럼 옷가지와 이불 등 작고 가벼운 물건들을 걸러냈다. 저 소나무가 사람도 살렸더라면….

마을 주민 1만7000여명 중 1만명이 실종된 상태다. 간신히 재앙을 피한 7000여명의 주민 가운데 1000여명이 시즈카와 소학교(초등학교)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 소학교 입구엔 생존자들의 이름이 여러 색깔의 급한 필체로 적혀 있다. 응급실로 쓰이는 소강당엔 물과 매트리스가 쉴 새 없이 들어갔다. 힘없는 노인들이 매트리스 위에 누워 의료진의 진료를 받는 중에도 무너진 건물더미에서 구조된 한 노인이 들것에 실려 들어왔다. 10여명의 소방대원이 마을 곳곳을 돌며 생존자 확인에 여념 없었다.

일곱 살, 한 살 아이를 둔 사사키 유미(37·여)씨는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며 쓰나미가 마을을 덮쳤던 순간을 기억했다. 사사키씨는 믿을 수 없는 풍경에 온몸이 굳었다. 하지만 바닷물이 마을 입구로 밀려오자 사사키씨는 아이들 손을 잡고 무조건 산 위로 내달렸다. 미우라 유코(63·여)씨도 쓰나미를 보자마자 맨발로 집 후문 야산으로 뛰었다. 미우라씨는 “지금 제일 걱정되는 건 가족과 지인의 생존”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지난 50년간 이 마을에서 3번의 지진을 겪은 사토 아키라(65·여)씨는 “지금까지 겪은 지진은 모두 예고편에 불과했다”며 “이런 큰 쓰나미는 우리 마을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토씨는 “건물에 묻힌 사람보다 바다로 휩쓸려간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시즈카와 소학교 입구서 만난 한 여성은 이불과 간단한 옷가지를 챙겨 온 여동생을 보고는 통곡부터 했다. 중앙 피난처인 운동장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대부분 차분히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입을 옷도, 마실 물도 없었지만 서로를 다독이며 서로 몸과 마음을 녹였다.

대피소 자원봉사자들은 의약품이 가장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도로 대부분이 유실돼 물과 식료품, 담요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자위대 헬리콥터들이 도심 병원과 재해대책본부인 미나미산리쿠 종합체육관을 오가며 환자를 실어 나르고 구호품을 전달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물도 전기도 가스도 공급되지 않는 작은 산골마을은 지금도 가족 생사를 확인하려는 이재민의 애타는 마음만 가득했다. 아름다웠던 해안 마을은 지금은 차량용 입체 내비게이션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