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강렬] 한·일 해협 방파제를 넘어
입력 2011-03-14 18:02
지진과 쓰나미로 가족과 이웃을 잃고 식수와 음식조차 구할 수 없는 극한 상황의 일본 이재민을 보는 우리 국민 마음이 편하지 않다. 폐허 속에서 질서를 지키며 슬픔을 절제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더욱 마음이 아프다. 지진 후 급작스럽게 밀려온 쓰나미에 쓸려 바다로 간 사람들과 지진으로 갈라진 땅 속,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사망했거나 갇혀 구조를 기다리는 이들이 얼마인지 모른다. 주민 1만여명이 한순간에 휩쓸려 나간 도시만 여러 곳이라고 한다. 피해 복구는 나중 문제이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는지 알 수 없다.
쓰나미가 밀려오는 순간 자동차로 필사의 탈출을 하다가 휩쓸려나간 사람들은 살아있는지? 병원 옥상과 학교 운동장에서 SOS를 써놓고 하얀 수건을 흔들던 그들과 쓰나미에 밀린 배가 방파제를 넘어 육지 육교에 걸려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 그 안에 탔던 이들은 어떻게 됐는지? 방파제 끝에서 육지로 향해 내달리다 쓰나미에 휩쓸린 강아지조차 눈에 밟힌다.
사망·실종 수만명 구조 절실
한·일 양국은 역사적, 정치적, 사회·문화적, 경제적으로 항상 선린 우호를 유지해온 좋은 관계는 아니다. 역사적 구원(舊怨) 속에 서로에 대한 감정을 억눌러야만 했던 불편한 기억이 훨씬 많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저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다. 그들에 대한 묵은 감정은 묻어두자. 그렇다고 아주 잊어버리자는 것은 아니다. 독도문제와 한·일 과거사 문제로 나중에 다시 싸울지언정 지진 폐허 속에 비스킷 한 쪽과 라면 하나로 며칠을 견디고 물을 찾아 몇 시간씩 헤매고 있는 그들에게 우리가 먼저 도움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가장 절실한 것은 무너진 폐허 속에서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구조를 기다리는 이들을 살리는 일이다. 또한 안타깝게 희생된 이들의 주검을 수습하는 일이다. 이와 함께 외부와 연락이 끊긴 채 식수와 식료품을 구하지 못해 구호를 기다리는 이재민을 도와야한다. 폐허 현장을 수습하는 일은 그 다음이다. 지진 발생 5일째, 갇힌 그들을 살릴 수 있는 한계시간이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한국이 먼저 나서야 한다. 미국, 중국, 대만, 영국, 독일 등 수십 개국이 구조대를 파견하거나 위로금을 보내겠다고 한다. 우리 119 구조대 본대가 어제 출발했으나 많이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성금도 필요하지만 가장 먼저 재난 현장에 투입할 구조인력과 의료인력이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 지진에 한국정부는 최대한 지원을 하겠다”고 했지만 119 구조인력 100여명 갖고는 부족하다. 더 많은 인력과 구호물자를 보내야 한다. 가능하다면 구난 의료분야 전문 자원봉사 인력도 모집해 파견해야 한다.
이 와중에도 양국간 서로 감정의 앙금을 삭히지 못하고 인터넷상에서 막말을 주고받는 이들이 있다. 일부 혐한 감정을 가진 일본 젊은이들은 “한국인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싶지 않다” “동정 따위는 필요없다”는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또한 일부는 ‘일본 침몰’이라는 제목을 단 모 일간지에 대해 “한국 언론 정말 용서 못해!” 라고 항의하고 있다. 일부 우리 젊은이들도 일본 사이트에 가서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역지사지하는 자세와 감정의 절제가 상호 필요하다.
생색내지 말고 진정성 필요
선각자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전남 강진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운데 남을 도와주는 일에 정성을 쏟아야지 남을 도와주고 생색을 내면 그 도움 자체가 무효가 된다는 엄한 경고를 하고 있다. 다산 선생은 “남을 도와주는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하지만 생색을 내면 지난날 쌓아온 공과 덕이 하루아침에 재가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고 말했다. 고통을 당하는 일본을 도와주는 우리의 마음자세가 그래야 할 것이다.
이강렬 논설위원 ry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