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용웅] 전경련의 변신을 기대하며

입력 2011-03-14 17:43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새 회장이 됐다. 지난해 7월 조석래 회장이 사임의사를 밝힌 뒤 7개월간의 공백 끝에 지난달 24일 새 회장에 선출됐다. 비록 4대 그룹에서 회장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김우중 회장 이후 12년 만에 10대그룹 안에서 회장이 나온 데 대해 전경련과 재계는 대체로 만족해하는 분위기다.

허 회장도 취임포부를 밝혔다. 그는 우선 전경련의 나쁜 이미지를 개선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압축성장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국민들에게 이미지가 나쁘게 형성됐다”며 “앞으로 국민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전경련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또 “기적의 50년을 넘어 희망의 100년으로 가는 길을 열겠다”고 피력했다. 우리나라가 세계경제 10위권에 진입하기 위해 전경련이 앞장서고 전략국가들과의 경제협력과 민간경제 외교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정말 옳은 판단이고 진단이다.

하지만 허 회장의 말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자못 의심스럽다. 한편에서는 허 회장의 꿈이 정말 야무지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전경련이 국민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는 전경련은 예나 지금이나 대기업 이익에만 너무 치중하고 국민경제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 듯하다. 걸핏하면 세금감면을 요구하고 수틀리면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길 수밖에 없다고 협박한다.

전경련은 지난해 말 출범한 동반성장위원회가 대·중소기업 간 상생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이익공유제’를 반시장주의적 정책이라고 몰아세우고 있다. 재벌 대표 격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이익공유제가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모르겠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56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협력업체 지원실적과 거래관계 투명성 등을 평가해 기업순위를 공개하려는 동반성장지수는 대기업의 자발적 동반성장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전경련과 재벌의 이 같은 논리에 중소기업들은 코웃음을 친다. 대기업들이 겉으로는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상생 좋아하네’라며 중소협력업체를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2010년도 하도급 거래 서면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하도급 거래를 한 업체 중 47.0%가 하도급법을 위반했다. 이 같은 위반율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의 43.9%보다 3.1% 포인트나 높다. 하도급 대금지급 실태도 악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어째서 친기업 정책을 펴온 이명박 정부 들어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가 더 심해졌는지 납득이 안 된다. 이게 전경련이나 재벌이 말하는 시장경제라면 할 말이 없다.

탄소배출권 거래제에 대한 입장도 그렇다. 전경련 등은 대(對) 정부건의문에서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도입되면 기업들이 연간 수조원을 부담해야 한다며 시행연기를 요구했다. 이들은 만약 우리나라가 이 제도를 도입하면 대기업들은 제도도입이 안 된 중국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길 수밖에 없다고 정부를 압박했다. 결국 탄소배출권 거래제 시행은 2015년으로 2년 연기됐다. 정부가 재계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뿐 아니다. 재계는 현대자동차 하도급 노조에 대한 법원의 판결 등 기업부담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는 정책 등에 대해 시시콜콜 반기를 들고 있다. 매년 수천억원의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임직원들에게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있는 대기업들에게는 이런 부담이 사실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데도 난리법석을 떤다. 그러면서도 허구한 날 세금 깎아 달라, 규제 풀어 달라고 조른다. 마치 책임은 안 지고 먹을 것만 챙기는 어린애처럼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경련이 아무리 시장경제를 외쳐봐야 국민들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오히려 시장경제주의자들의 허구를 꼬집어 쓴 장하준 교수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귀를 기울이기 마련이다. 전경련의 변신을 기대해본다.

이용웅 선임기자 y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