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고로쇠, 아낌없이 주는 나무
입력 2011-03-14 17:44
고로쇠 수액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고로쇠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수액은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클 때 절정을 이룬다. 그런데 올해는 2월 초·중순까지는 영하의 날씨가 이어졌고, 2월 하순부터는 밤낮으로 포근해 생산량이 지난해 대비 20%까지 줄어들었다. 구제역에 고로쇠 수액이 오염되지 않느냐는 의심도 끼어들어 출하량이 많이 감소했다.
고로쇠 수액은 전설에서 시작된다. 좌선을 마친 도선국사의 무릎이 펴지지 않아 옆에 있던 나뭇가지를 잡고 일어서던 중 나뭇가지가 부러졌고, 거기서 나온 수액을 먹고 벌떡 일어섰다고 한다. ‘골리수(骨利水)’라는 어원도 거기서 나왔다. 삼국시대에 어느 장군이 화살이 꽂힌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시고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국립산림과학원에서 고로쇠 수액이 골다공증과 어린이 뼈 발육, 생체면역력 강화에 효과가 있음을 밝혀냈다.
고로쇠 수액은 나무의 영양소다. 겨우내 저장해둔 포도당과 과당 등 영양분을 잎눈 쪽으로 상승시키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농가에서는 주요한 소득원이다. 줄기를 찍은 자리에 호스를 꽂아 수액을 뽑아내면 나무의 생장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헌혈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수액을 뽑아내도 무방하다.
다만 산림청은 나무 보호를 위해 지침을 만들었다. 구멍을 나무 굵기에 따라 1∼3개로 제한하고, 한 나무에 1년에 한 번만 허용한다. 지름 10㎝ 이하의 어린 나무에서는 채취를 금한다. 나무의 한쪽만 뚫지 말고 분산하며, 채취가 끝난 뒤에는 나무의 조직이 빨리 아물고 병균이 침입하지 않도록 약제를 발라줘야 한다.
고로쇠나무는 목재로도 요긴하다. 예전에 고로쇠는 단풍나무 가운데 하나로 가을 산천을 아름답게 꾸미는 역할 외에는 별 볼 일 없는 잡목이었으나 1960년대에 볼링이 도입된 이후 몸값이 달라졌다. 고로쇠는 완전히 말랐을 때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경도가 높아 볼링장의 마루판이나 핀의 재료로 각광받았다. 나무의 조직이 치밀하고 결이 곱고 무늬가 아름다워 바이올린이나 기타 등 현악기의 옆판과 앞판에 쓰인다.
고로쇠나무는 신이 인간에게 내린 천연의 선물이다. 봄이면 몸에 흐르는 수액을 빼내주고, 여름에는 무성한 그늘을 주며,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들이고, 겨울에는 마루바닥에 깔려 사람의 몸을 받아들인다. 고로쇠는 정말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