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800만명 방사능 노출 ‘체르노빌 악몽’ 가능성은

입력 2011-03-14 00:53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강진의 여파로 12일 발생한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가 최악의 경우 1986년 4월 발생한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같은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당시 우크라이나 동북부의 체르노빌 원전 4호기가 폭발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벨라루스 등 당시 옛 소련 지역 14만5000㎢ 이상에 방사성 낙진이 대량으로 대기 속에 흩날리면서 약 800만명이 직간접적으로 방사능에 노출됐다. 2005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주요 3개 피해국(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정부가 주도한 ‘체르노빌 포럼’ 보고에 따르면 이 사고로 직접적인 사망자 수는 56명, 이후 방사능 피폭에 따른 암 등으로 사망하는 인원은 4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원자력 전문가들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의 경우 체르노빌 원전사고와는 상황이 달라 체르노빌 같은 핵 참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카이스트 원자력공학과 장순흥 교수는 “지금까지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IAEA가 정한 사고고장등급(INES) 기준으로 보면 ‘레벨 4’로 평가되는데, 체르노빌 사고 ‘레벨 7’, 미국 스리마일 아일랜드 사고(TMI) ‘레벨 5’보다 낮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일본의 원자로는 체르노빌 원자로보다 구조 자체가 안전하다. 후쿠시마 원전 1호기가 들어 있는 건물 외벽은 붕괴됐지만 원자로를 덮고 있는 강철 격납용기는 손상되지 않아 대규모 방사능 누출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원자력연구기관인 쿠르차토프연구소 예브게니 베릴호프 소장도 “체르노빌 원자로는 ‘흑연 감속로’로 고온에서 불이 잘 붙는 흑연을 감속재로 사용하는데, 별도의 격납용기가 없는 탓에 폭발에 취약해 대규모 방사능 유출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 원전(비등수형 경수로)은 흑연 감속로가 아니어서 연소할 물질이 없다. 체르노빌 원전사고같이 확대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전망했다.

후쿠시마 원전 1호기 상황과 비슷한 사례는 1979년 미국 스리마일(TMI) 원전사고다. 당시 펜실베이니아 주 해리스버그 인근에 위치한 가압 경수로에서 물을 공급하는 주급수 펌프가 고장을 일으켰다. 운전원 실수로 긴급 노심 냉각장치(ECCS)까지 작동하지 않아 냉각장치가 완전히 파열됐다. 결국 노심 용해가 일어나 대량의 방사능 가스가 발생했지만, 원전의 5중 차폐시설 덕분에 외부 유출된 방사선 양은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현재 일본 원전 기술진은 바닷물을 끌어들여 일부 용해된 노심이 들어 있는 원자로의 온도를 식히려 안간힘을 쏟고 있다. 노심 추가 용해를 막으려면 끊긴 전력을 빨리 복구해 충분한 냉각수를 공급해야 한다. 만약 손상된 노심을 식히는 데 실패하면 우라늄 연료가 녹아내려 ‘방사능 용암’을 이뤄 강철 격납용기 바닥으로 흘러나올 수 있다. 만일 녹아내린 방사능 용암이 강철 격납용기를 뚫고 나가 외부로 유출될 경우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