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다이시 현장 르포] 5시간 ‘길’ 19시간 걸려… 주민들 “먹을 게 동났다”

입력 2011-03-14 00:45


13일 오후 3시, 일본 나토리(名取)시 시모마스다(下增田) 마을에 도착했다.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台)시 주택가에서 해안 쪽으로 10㎞ 떨어진 인구 5000명의 작은 해안마을이다. 12일 오후 8시 도쿄 하네다 공항 도착 후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긴급구호팀의 차를 타고 국도로 달린 지 19시간 만이다. 도쿄에서 330㎞ 정도 떨어진 이곳은 평소 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5시간이면 닿는다. 고속도로는 모두 통제됐다.

마을은 참혹했다. 논과 밭은 바닷물로 가득 차 원래 늪지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호수로 변한 논밭 한가운데에는 소형 굴착기와 트랙터 등이 둥둥 떠다녔다. 마을 안쪽으로 이동할수록 참상은 더 심했다. 강력한 허리케인이 쓸고 간 것처럼 집과 비닐하우스의 뼈대는 휘어지고 부러졌다. 차들은 주택 벽을 뚫고 박혀 있거나 구겨진 채 건물 2~3층 높이만큼 쌓여 있었다. 대형 어선과 관광용 보트도 선착장에서 10㎞ 이상 떨어진 주택가까지 밀려와 있었다. 마을 곳곳 주택과 가재도구 더미에선 계속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재해 현장 위로 자위대 헬리콥터와 소방헬리콥터 대여섯대가 계속 날아다녀 전쟁터를 연상시켰다.

주민들은 망연자실했다. 60년간 살아온 집을 단 몇 분 만에 잃어버린 소라구치(65)씨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지었다. 소라구치씨의 집 바닥은 파도에 밀려온 볏단으로 가득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스즈키 류타로(9)군에게 부모의 행방을 묻자 고개를 떨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평생 농사를 지었다는 나카자와(56)씨의 집은 뼈대만 앙상했다. 거실엔 은색 승용차 한 대가 집주인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나카자와씨는 “복구에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데다 농기계들이 모두 망가져 어떻게 농사지어야 할지 앞이 캄캄하다”면서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오크차 에이키(44)씨는 “높이 10m가 넘는 쓰나미가 마을을 덮치는 모습을 보고는 도망치지 않으면 죽겠다는 생각에 차를 돌려 미친 듯 가속페달을 밟았다”고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이와테(岩手)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시에 사는 미치코 야마다(75)씨는 “노부부가 차에 탄 채 쓰나미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걸 직접 봤다”며 울먹였다.

내륙 지역은 의외로 피해가 적었다. 미야기현 센다이시나 후쿠시마(福島)현 후쿠시마시, 도쿄시 등 내륙 도시에선 건물 전체가 무너진 모습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도로가 일부 유실되거나 창문이 깨진 정도의 피해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가스와 수도·전기가 모두 끊긴 후쿠시마와 센다이 지역 대부분은 도시로서의 기능이 마비됐다. 휘발유나 난방유 공급도 끊겼다. 거의 모든 주유소가 문 닫았고, 기름을 확보한 일부 주유소 앞엔 차량들이 몰려 대기하는 줄이 1㎞ 가까이나 됐다.

식품과 음료도 동났다. 센다이시 곳곳에 있던 편의점들은 더 이상 팔 물건이 없어 휴업 상태였다. 일부 마트 앞엔 수백명이 입장 순서를 기다렸다. 센다이시의 한 마트 앞에서 만난 사이토 마쓰야(39·여)씨는 “아무것도 먹을 게 없다”며 “세살짜리 아이에게 먹일 것만 구할 수 있다면 몇 시간이라도 기다리겠다”고 발을 굴렀다. 물을 구할 수 없는 시민들이 자판기로 몰리면서 센다이 시내 대부분 자판기엔 커피를 제외한 모든 음료가 동나기도 했다.

센다이=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