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광복] 침몰하지 않는 국가 되려면
입력 2011-03-13 17:54
일본 역사상 최악의 대지진이 11일 오후 발생했다. 높이 10m의 쓰나미가 일본 동북부 지역 연안을 강타했다. 언론은 “일본 최후의 날, 일본 침몰, 쓰나미 대재앙” 등의 타이틀로 속보를 쏟아내고 있다. 세계에서 지진에 가장 잘 대비하고 있는 일본도 자연의 힘 앞에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까지 사망자가 수천 명을 넘어서고 있고 피해액은 집계조차 안 되고 있다.
대참사에도 침착하게 대응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세계 주요 언론들은 일본이 사상 최악의 대지진 앞에 침착하게 잘 대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세계 지진 관측 사상 다섯 번째로 강력한 지진임에도 일본은 2004년 인도네시아 지진에 따른 쓰나미, 지난해 아이티 지진 때보다 잘 대응하고 있다. 이번 일본 대지진은 지난해 아이티 지진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강력함에도 22만명이 사망한 아이티보다 사망자가 적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조기경보시스템, 철저한 내진설계 등 지속적인 지진 대비가 불행 중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볼 수 있다.
2006년 개봉된 ‘일본 침몰’이라는 영화는 일본에서 엄청난 파괴력의 지진이 발생하자 각료들은 국민을 외면한 채 해외로 도망가기에 바쁘고 불안감에 휩싸인 국민들 역시 하늘로 바다로 피난처를 찾느라 전국은 아수라장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지진 후 일본 정부 및 국민의 대처는 영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일본 국민은 그동안 지진 대비훈련을 수없이 반복했고 정부는 위기관리시스템을 잘 갖춰 이번 대참사에 온 나라가 큰 동요 없이 침착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면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 때 미국 정부는 우왕좌왕했다. 구조대원들은 주방위군 대신 자원봉사자로 채워졌고, 시신이 며칠씩 쓰레기더미와 함께 하수도에 떠다녔다. 심지어 연방재난관리국은 허리케인 상륙 후 5일이 지나서야 주민탈출용 버스 제공을 승인하는 등 위기재난관리의 무능함을 드러냈다. 피해 지원과 복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많은 비난을 받았고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되었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존권을 수호하여 평화와 번영을 이루는 것이다. 이제는 자연재해, 안보위기 그리고 사회경제적 위험 등 모든 위기·위험에 어떻게 대처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느냐가 국가의 능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가 과학기술과 산업의 발달로 물질적 풍요를 이뤘지만 반대급부로 위험도가 대폭 증가하고 있다는 위험사회(risk society)론을 주창했다. 그는 몇 년 전 우리나라를 방문한 자리에서 특히 압축성장한 한국은 아주 특별한 위험을 갖고 있는 사회라고 지적했다. 그가 지적한 대로 특별한 위험을 내재하고 있는 한국사회는 변한 게 없다. 한국은 지난 수년 동안 천안함 피폭, 연평도 피격, 구제역 사태 등 대형 재난과 사건사고를 연속적으로 경험했다. 그러나 위기대응시스템은 효율적으로 가동되지 않았다. 안전과 안보불감증의 사회분위기도 총체적 난제다. 잘 되겠지 하는 낙관주의와 내게는 위험이 닥치지 않을 거라는 자기 예외에 대한 맹목적 확신은 위기위험관리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위험 대비한 안전판 필요
엄청난 재난 앞에 차분히 대처하는 일본을 보면서 우리의 위기관리대응에 대해 몇 가지 지적하고 싶다. 첫째, 위기와 위험에 대한 교육이다. 학생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에게도 안전의 중요성을 교육해야 한다. 실제 상황 대처방법과 실습을 지속적으로 시켜야 한다. 민방위의 날 연습을 형식적이 아닌 실제화해야 한다. 둘째, 모든 위험은 단지 그 사태로 그치지 않고 연쇄적 위험으로 확산된다는 것이다. 지진 사태가 원전의 붕괴로, 구제역 문제가 환경재앙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단편적, 대증적 처방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단순시스템이 아니라 복합시스템이 필요하고, 문제발생 시 종합적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대처하는 컨트롤타워 강화가 필요하다. 셋째, 정책결정자들은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위기를 잘 관리하여 국가의 안전을 지켜냄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얻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철저한 대비와 관리가 국가 침몰을 막는 안전판이다.
안광복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