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회화의 은은한 멋에 취하다… 3월 15일부터 ‘옛 그림에의 향수’ 전

입력 2011-03-13 20:16


실로 오랜만이다. 서울 견지동 동산방화랑이 15일부터 28일까지 여는 ‘조선 후기 회화-옛 그림에의 향수’는 1983년 같은 전시장에서 열었던 ‘조선시대 후기 회화’에 이어 28년 만에 마련한 옛 그림 전시회다. 간송미술관이나 삼성미술관 리움의 고서화 전시 외에는 옛 그림을 보기가 쉽지 않은 실정에서 한국화 전문 상업화랑인 동산방의 이번 전시는 반갑기 그지없다.

조선 후기 회화사에 이름을 남긴 33명의 그림과 글씨 등 40여점이 출품된 전시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임진왜란 이전의 희귀 작품이다. 이 가운데 탄은 이정(1541∼1622)의 ‘니금세죽(泥金細竹)’은 이금(아교에 개어 만든 금박가루)을 이용해 그린 대나무 그림이다. 아래 위로 뻗어난 댓잎의 모습에서 탄은의 굳세면서도 능숙한 운필을 살펴볼 수 있는 수작이다.

조선시대 초서(草書)로 이름을 날렸던 고산 황기로(1521∼1567)의 ‘시고사수(詩稿四首)’는 “가을바람 천리 길을 몰래 찾아와 한나절 매화 핀 창가에서 웃음꽃 피었네 나 또한 안개 낀 강가에서 낚시대 드리우고 흰갈매기와 상대하는 게 진귀하다오”라는 내용도 서정적이지만 자유분방한 붓의 휘날림이 두드러진다. 임진왜란 이전 초서의 대표작으로 최근 보물 1625-2호로 지정됐다.

조선시대 이른바 ‘3원3재’(단원 김홍도·혜원 신윤복·오원 장승업, 겸재 정선·현재 심사정·관아재 조영석)의 그림도 빼놓을 수 없다. 단원의 ‘어해도(魚蟹圖)’는 등을 맞댄 게 두 마리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그림으로 일제강점기 이후 처음 선보인다. 오원의 작품은 화조(花鳥)와 기명절지(그릇과 각종 화훼류)를 그린 병풍이 출품됐다. 혜원의 작품은 이번 전시에 포함되지 않아 아쉽다.

겸재의 그림으로는 서울 북악산 정상 부근의 바위를 그린 ‘부아암’, 한 인물이 강가의 바위 끝에 홀로 앉아 멀리 강을 바라보고 있는 ‘독좌관수(獨坐觀水)’ 등 진경산수화가 나왔고, 현재의 작품은 냇가에 앉은 장끼와 까투리를 그린 그림과 산수도 등을 볼 수 있다. ‘자화상’으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의 말 그림, 표암 강세황의 산수도 등은 작가의 전형적인 화풍을 보여주는 그림들이다.

추사 김정희는 부채 위에 쓴 글에서 “평생 마음을 지키는 힘이 한 순간의 잘못된 생각을 막지 못하네 세상살이 삼십년이 지나서야 공부한다는 것이 복임을 바로 알았네’라며 자신을 뒤돌아 본다. 또 당대 ‘묵란도’의 라이벌이었던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운미 민영익의 난 그림도 한 자리에서 비교해 볼 수 있다. 우봉 조희룡, 황산 김유근, 호생관 최북 등의 작품도 나왔다.

조선 후기 회화의 면모를 두루 살필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동산방화랑 박우홍 대표의 부친인 창업주 박주환씨 때부터 인연을 맺어온 소장가들이 화랑을 믿고 작품을 선뜻 내준 덕분에 가능했다고 한다.

도판 해설을 맡은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조선시대 회화사를 빛낸 분들의 참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한 전시로 가히 옛 그림에 대한 향수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02-733-5877).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