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이건희 ‘낙제점’ 발언 듣기 거북”…반공개적 불쾌감 표출

입력 2011-03-11 21:52

청와대가 11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현 정부의 경제정책 점수가) 낙제점은 아니다”는 발언에 불쾌감을 표시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듣기 거북하다”고 했고, 다른 고위 관계자도 “의아스럽다. 잘 아는 분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라고 말했다. 국내 1위의 대기업 회장이 정부 경제정책에 박한 점수를 주고, 다음날 청와대가 반공개적으로 반박하는 것 모두 이례적인 상황이다.

경제수석실을 비롯해 청와대 내에서는 이 회장 발언이 과했다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핵심 관계자는 “삼성이 큰 기업이긴 하지만 어쨌든 개별 기업”이라며 “개별 기업 회장이 국가 경제정책에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은 문제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대한민국이지 삼성민국은 아니지 않느냐”고도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했고,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주,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 등 성공적으로 경제를 운용해 왔는데, 이를 평가절하 하는 듯한 발언에 섭섭함이 묻어난다. 집권 4년차에 들어서자마자 비판적 발언이 나온 점에 주목하는 분석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2008년 집권 이후 대기업 활동에 많은 배려를 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핵심 관계자는 “여러 비판이 있었지만, 대기업 활동을 최대한 배려했다. 지난 3년간 대기업의 실적도 좋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 이 회장은 그간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대선 승리 이후 이 대통령이 이 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2007년 12월 28일 당선인 신분으로 재계 총수들과 가진 회동에서였다. 이 대통령은 당시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적) 정부를 만들겠다. 저에게 직접 연락해도 좋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당시 굳은 표정으로 회동장소에 들어섰으며,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2009년 12월 이 회장만을 위한 특별사면을 실시했다. 정치적 부담이 큰 선택이었다. 특혜라는 비판도 많았다. 역대 정부를 통틀어 경제인에 대한 단독 특별사면은 처음이었다. 이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와 국가 경쟁력 제고 두 가지를 이 회장 단독 사면의 근거로 설명했다. 청와대 측은 “고심 끝에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이후 이 대통령은 청와대 회동이나 대기업 총수 간담회 등에서 이 회장을 몇 차례 만났고, 그때마다 친근함을 표시하며 가벼운 덕담을 건넸다.

청와대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삼성은 황급히 진화에 나섰다. 한 관계자는 “‘낙제는 면했다’는 부분보다는 ‘과거 10년에 비해 상당한 성장을 했다고 본다’는 쪽에 방점을 둬야 한다”고 했다.

이 회장이 현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한 게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점을 강조했다는 얘기다. 이 회장은 평소에도 좋은 성과가 나오더라도 칭찬보다는 “안주하지 말라”는 경고 어법을 구사한다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삼성은 청와대에 “진의가 잘못 알려졌다”고 해명했다는 후문이다.

남도영 기자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