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데이트-브랜드 ‘도호’의 수석 디자이너 도호] “아방가르드한 패션에 뉴요커들 열광”
입력 2011-03-11 17:40
‘지구촌 여성 모두에게 내가 만든 옷을 입히고 싶다.’
디자이너 브랜드 ‘도호’의 수석 디자이너 도호(54). 그는 요즘 디자인을 시작했던 스물서너 살 때부터 품었던 꿈을 활짝 펼치기 시작했다. 4월에는 중국의 베이징 상하이 항저우, 6월에는 앤트워프 등 벨기에 13개 도시에서 ‘도호’가 판매된다. 3년 전부터 파리와 뉴욕 기성복전시회에 나가 수주를 받았던 도호가 본격적인 수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3,4년 후 파리나 뉴욕컬렉션에 참가할 계획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 각국 여성들이 도호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요.”
도호는 아직 국내에서도 유명 디자이너는 아니다. 그런 그가 세계 패션 시장 진출을 낙관하는 것은 지난 2월 뉴욕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그는 뉴욕패션위크 기간(2월 9∼17일) 중 문화체육관광부가 우리나라 패션을 알리기 위해 마련한 컨셉트코리아Ⅲ에 참가했다.
“미니멀(단순)한 옷을 좋아하는 뉴요커들이 디테일이 강하고 아방가르드(전위적)한 제 옷을 좋아할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반응이 놀라웠어요.”
그는 “뉴욕시장에도 특별한 옷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빨리 우리 옷을 갖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고 말했다. 딱 4명의 국내 디자이너만 초청받았던 그 행사에서 도호는 400여명의 해외유명바이어들, 현지 패션인들과 패션전문기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리고 1만 달러어치 이상 판매했고, 수주상담도 이어졌다. 바이어와 기자들은 그에게 “어디서 공부했느냐”는 질문을 퍼붓더란다.
“어렸을 때부터 옷입기를 즐겼죠. 교복도 그냥 입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을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디자이너였던 남편과 결혼하면서 우연찮게 디자인을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1970년대 후반 대구에서 부티크를 열었는데, 디자이너인 남편의 옷보다 도씨가 만든 옷이 더 잘 팔렸다. 남편은 아내의 ‘끼’를 알아보고 디자인실을 통째로 양보하고, 경영을 맡아 아내의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했다. 도씨는 “경영과 판매까지 신경 써야 하는 다른 디자이너들이 너무 부러워한다”면서 “남편과 도호의 글로벌화를 위해 함께 뛰고 있는 아들에게 너무나 고맙다”고 말했다.
‘스타일화 그리는 것도 따로 배운 적 없다’고 솔직히 말할 만큼 학력이나 경력을 구태여 치장하지 않는 그는 본사도 대구에 그대로 두고 있다. 대구가 섬유도시이기 때문에 원하는 원단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만 좋으면 된다는 자신감이 있어서다.
“우리 소재와 도호의 독특한 디자인이 만난다면 세계 어느 곳에 나가도 성공할 것으로 봅니다.”
율동감 있는 디자인선과 맞춤옷(쿠틔르)처럼 손맛이 느껴지는 디테일이 특징은 그의 옷은 유난히 마니아가 많다. 그는 봄옷 중 벌써 절품된 디자인이 여럿 된다고 자랑했다. “시선을 사로잡는 특별한 디자인으로 전 세계 여성들을 사로잡을 생각”이라며 열세 살 소녀처럼 활짝 웃었다.
김혜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