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들고 관객 찾은 연변 출신 조선족 영화감독 ‘장률’
입력 2011-03-11 17:40
언어·핏줄 같지만 강을 경계로 한 조선족과 탈북자의 불신·우정 그려
한국인, 정확히는 휴전선 남쪽 사람들에게 ‘국경’이라는 개념은 아무리 글로벌 시대더라도 여전히 생소하다. 영화 ‘두만강’을 들고 관객을 찾아온 장률(51) 감독을 일컬어
‘경계인’이라고 부르는 건 장 감독을 지칭한다기보다 외려 경계라는 걸 가져본 적 없는 사람들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말일 수 있다. 재중동포 3세 혹은 조선족이란 단어로 지칭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장 감독을 최근 서울 필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대중들에겐 아직 낯설지만, 여섯 편의 영화로 ‘거장’ 칭호를 듣는 감독이다.
“이상하게 영화인들이 영화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어요. 만드는 사람이 공간과 소리에 민감한가 아닌가에 달린 문제예요.”
그는 ‘아무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영화를 시작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불혹을 앞둔 11년 전 처음 ‘11살’로 데뷔한 후, 여섯 편의 영화를 만들며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두만강을 건너 넘어오는 동포들과 중국 국적을 가진 다른 민족 사람들을 늘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연변 출신. 세상은 그의 영화에서 ‘경계’라는 코드를 읽었으나 그는 무심했다.
“평론가들이나 밖에서 보는 사람들이 경계 얘기를 하니까 생각해보는데, 저는 거기(두만강) 출신이고 경계라는 게 저에겐 삶이었으니까 제 정체성에 대해서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두만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중국으로 나뉜 사람들이 서로를 의심하는 가운데서도 두 소년이 만나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다. 언어와 핏줄이 같은 사람들이 금단의 강을 경계로 조선족과 탈북자로 나뉜다. 흰 눈 가득 내린 겨울을 배경으로, 음악 한 줄기 존재하지 않는 영화다.
“그 곳 사람들은 표정 만들기에 익숙하지 않아요. 걸음도 굉장히 느리지요. 영화 속 사람들이 걷는 걸음으로 서울의 지하철역을 걸어간다고 하면 이상해서 눈에 띌 거에요.”
그의 말마따나, 영화 속 사람들은 무표정하고 말수가 적으며 행동이 느리다. 이것은 그의 다른 영화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장 감독이 영화 ‘경계’(2007)를 찍을 당시 몽골의 게르(초원 한가운데 위치한 유목민들의 거주지)에 사는 사람들을 관찰했을 때 그 사람들도 그랬다고 한다. 감독이 말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민감함’은 결국 최소한의 소리와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표정이나 말이라는 것도 사람과의 관계 속에 형성되는 것. 물자나 사람이 분주히 몰려 있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들의 무표정을, 무표정 속의 강한 애정을, 그는 특유의 미니멀리즘으로 담아냈다.
그의 영화엔 한국어 대사에서조차 자막이 흐른다. 자막과 함께 인위적인 생소함이 같이 흐르는 듯하다. 이해하기 불가능한 것도 아니던데 자막을 넣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부산영화제에서 자막 없이 상영했더니 못 알아듣겠다고 항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그러더니 “(기자는) 자막과 함께 봐서 들을 만했다고 생각하는 걸 거예요” 한다. 경계 따위는 생각조차 않고 사는 우리에게, 영화 속 낱말, 억양, 정서는 그만큼 이질적이다. 카메라는 무심하고 조용하게, 극장 의자에 등 기대고 앉은 관객들의 나태와 안일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15세가. 17일 개봉.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