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지현] 서드 에이지
입력 2011-03-11 17:52
한국인의 생애주기가 달라지고 있다. 빠른 은퇴와 늘어난 수명으로 인생의 3분의 1을 노년기로 보내는 것이다. “자식 키우고 집 장만하며 정신없이 살다가 눈을 떠보니 어느덧 정년이 됐다”고 말하는 퇴직 가장들은 ‘서드 에이지(Third Age)’에 접어든다. 서드 에이지란 ‘사회적 연령’으로 중년기 이후의 한 시기를 의미한다.
유럽에서는 1970년대부터 인간의 생애주기를 네 단계로 나누고 이 용어를 사용했다. 퍼스트 에이지(First Age)는 출생하여 직업을 준비하는 시기까지이고, 세컨드 에이지(Second Age)는 직업을 갖고 가정을 형성하는 시기이다. 서드 에이지는 사회, 가정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아실현이 정점에 도달하는 시기이며, 포스 에이지(Fourth Age)는 노화의 단계로 의존적인 삶을 영위하는 시기이다.
국내 학자들은 50∼75세를 서드 에이지로 본다. 한국의 서드 에이지는 퇴직과 맞물려 시작되기 때문에 퇴직에 대한 준비 없이 이 시기를 맞는다면 ‘퇴직 쇼크’에 빠질 수 있다. 현재 퇴직준비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그러나 퇴직준비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받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재취업률이나 자아정체성, 위기대처 능력이 높다는 연구 보고서들이 나오고 있다. 적어도 퇴직 1년 전부터 재산·건강관리, 전직요령, 위기대처 능력 등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서드 에이지를 행복하게 보내려면 일반적으로 정신과 육체의 건강, 생존의 단계를 넘는 넉넉한 연금, 주거 공간, 마음이 맞는 동반자나 이웃, 한 가지 이상의 취미생활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한 가족관계’이다. 일에만 매달려 가족도 자신도 돌보지 못한 대한민국 남성들이 가정으로 돌아오는 이 시기가 자칫 갈등의 시기가 될 수 있다. 자녀들이 학업과 결혼으로 가정을 떠난 상태에서 아내와 단 둘이 남겨진 가정생활을 행복하게 보내려면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헤아려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시기는 억압된 자아를 풀어주고, 인생을 스스로 주도해야 하는 시기이다. 그동안 성공을 추구해왔다면 의미를 추구해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인생의 발달 단계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내 인생이 리모컨에 의해 작동되는 것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인생 전반기에 청춘의 성장이 있다면 인생 후반기엔 중년의 성장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이지현 차장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