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숨은 폭력을 향해 날려 보내는 통쾌한 화살… 문호성 장편소설 ‘육도경’

입력 2011-03-11 18:03


경남 남해군이 주관하는 제1회 김만중문학상 수상작인 문호성(53·사진)의 장편 ‘육도경(六島經·자음과모음 펴냄)’에 담긴 음성은 묵직하다. “이제 내가 묵혀둔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드러남과 드러냄. 이틀 전에 만났던 한 사건이 내 의식의 깊숙한 바닷속을 부유하던 어떤 기억들을 드러나게 했다. 그 기억들은 스스로 던지는 파문을 통해 또 다른 언어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었다.”(11쪽)

2년 전 중편 ‘폐선 항해’로 해양문학상을 수상하며 늦깎이로 등단한 문씨는 지난해 장편 ‘어떤 현문에 대한 보고서’에 이어 1년 만에 또다시 ‘육도경’을 탈고할 만큼 묵혀둔 이야기가 넘실대는 작가다. 소설은 중국 산해경(山海經)의 형식을 빌었다. 동도경(東島經), 북도경(北島經), 서도경(西島經) 등 6개의 가상 섬이 배경이다.

독재정권시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주인공은 어느 날 부둣가에 떠오르는 익사체를 보고 회상에 젖는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군대 시절엔 선임 장교로부터 폭력을 당하며 성장한다. 죽음에 대한 그의 공포는 대통령의 죽음, 남쪽의 폭동, 삼청교육대 등의 사회적 현실로 인해 더욱 심화된다. “신문 속에는 큼지막한 제목들만 매달려 있을 뿐 사태의 경위를 짐작케 하는 명료한 문장은 전혀 없었다. 그저 불순분자, 폭도, 배후 세력, 무기고 탈취, 진압병력 투입 따위의 추상적인 말들만 책갈피에 숨어 있던 마른 꽃잎처럼 후두두 떨어졌다.”(150쪽)

성인이 되어 중국 선박 회사에 들어간 그는 그곳에서 성실하게 일하던 현장감독의 죽음을 목격하지만 아무 손도 쓰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노르웨이 선박 회사로 직장을 옮긴다. 그는 자신이 겪은 고통과 상처를 잊기 위해 북극으로 향하지만 오히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북극의 무미건조한 평화로움이 그를 또다시 불안케 한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정착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설사 북극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죽음을 수락하자. 그래야만 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집으로 돌아가려 하고, 또 집으로 가는 길을 향해 서 있다.”(299쪽)

비극의 한국 현대사를 섬과 섬을 떠도는 해양오디세이아로 써내려간 문씨는 “내 삶의 많은 부분에 밀어내기 힘든 그늘을 부여했던, 왜곡된 시공 속에 은밀히 숨어 있는 폭력들을 과녁 삼아 이 글을 쏜다”고 ‘작가의 말’에 적었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