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상온] 군사문제, 과장도 축소도 안된다
입력 2011-03-10 17:31
외국에서 활약하는 우리 프로 운동선수가 어느 날 느닷없이 성적 부진으로 퇴출됐다든지 2군으로 밀려났다는 기사가 가끔 눈에 띈다. 그럴 때 대개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지곤 한다. 이제까지 보도로 미루어 잘나간다고만 생각했는데….
어쩌면 선수의 행적을 꾸준히 눈여겨보지 않은 탓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국내 언론이 대체로 선수의 활약상에 중점을 둔 보도를 해온 탓이 더 커 보인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우리 선수가 외국에서 잘하고 있다는 소식이 아무래도 언론 입장에서는 기사 가치가 크고 더 잘 읽힐 테니까.
군사 문제, 크게는 국방 전반에 관한 보도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평소에 나오는 기사를 보자. 우리 군은 철통같은 방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북한이 도발하면 더 큰 보복을 할 준비도 돼 있다. 또 F-15K, 이지스함 등 북한은 꿈도 못 꿀 고가의 최신예 장비가 진작부터 실전배치돼 있다. 최신 전자전에 대비해 사이버사령부도 만들었다.
그뿐인가. 세계 최고 수준의 ‘명품’ 국산 무기가 즐비하다. K-11 복합소총이며 K-2 전차 ‘흑표’며 K-9 자주포 등. 북한의 무력 도발은 언감생심이고, 한국은 이미 ‘방산(防産) 선진국’이라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신뢰와 자부심에 금간 국민
그런데 북한이 어뢰를 쏴 우리 군함을 격침시키는가 하면 연평도의 민간인 밀집 지역에 대포를 무차별로 쏴대는 사태가 일어났다. 우리 군은 경계가 뚫린데 이어 그토록 다짐했던 반격도 제대로 못했다. 위기상황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
게다가 요 며칠 새는 수도권 일부에 위성위치정보시스템(GPS) 교란 전파 공격이 가해졌다. 아울러 국회 국방위에서는 ‘K 계열’로 불리는 국산 명품 무기들이 왜 결함투성이냐는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터져나왔다.
‘어느 날 느닷없이’ 이런 보도를 접하는 국민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늘 북한의 도발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던 우리 군에, 세계 정상급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던 국산 무기에 이렇게 허점이 많았나? 요즘 군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자부심은 금이 가고, 걱정은 태산이다.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언론 보도보다는 좋은 것, 잘한 것 위주로, 그것도 과대포장해서 국민에게 알려온 군과 정부 탓이다. 엊그제 국방부가 국방개혁 307계획을 발표했지만 중요한 것은 국방에 관한 한 국민이 헛된 자신감도, 공연한 불안감이나 반감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방개혁 계획은 물론 전력 증강을 비롯한 군사 대비태세와 무기 개발 등 군사 문제를 국민에게 알릴 때 군도 정부도 과대포장을 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에게 칭찬받고 싶고, 국민을 안심시킬 필요도 있을 것임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과장은 자만에 따른 안보의식 해이로 이어질 수 있다. 또 과장임이 드러났을 때는 지금처럼 군과 정부에 대한 불신을 촉발할 수 있다.
기밀 제외 사실대로 알려야
마찬가지로 군사 문제와 관련해 축소에 급급하는 것도 옳지 않다. 가령 군은 아직도 전체적으로 북한에 비해 전력이 열세라고 강조한다. 핵무기를 제외하고도. 실제로 전력이 열세인 부분도 있겠으나 국방예산을 더 확보하기 위한 ‘엄살’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북한 체제의 특수성으로 인해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다 해도 워낙 차이 나는 남북의 국방비를 비교할 때 이런 시각은 설득력을 지닌다. 이 경우 국방에 대한 염증 또는 반감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
다만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모든 군사 문제를 밝힐 수는 없다. 자칫하면 적을 이롭게 할 뿐일 테니까. 과장도 축소도 없이 알리되 군사기밀로 판단되는 것은 어떤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기밀을 유지하는 것, 그게 국민을 혼란과 충격에 빠뜨리지 않는 요체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