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화련] 머나먼 향기

입력 2011-03-10 17:27


우리 집에 금화산이라는 난이 있다. 난에 무지한 나는 그 이름을 화분에 붙은 이름표를 보고 알았다. 중국이 자생지인 보세란이라는데, 잎이 크고 시원하게 뻗어 씩씩해 보인다. 꽃도 잘 핀다. 해마다 잊지 않고 꽃대를 올린다. 밖에 두었다가 추워질 무렵 들여 놓으면 한 달쯤 쉬고 몸을 푼다. 꽃이 피면 반가우면서도 미안하다. 봄에 내어놓고는 들여 놓을 때까지 잊고 지내기 때문이다. 마당의 큰 나무 밑에 두면 다른 꽃나무들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다.

미안한 일은 또 있다. 나는 그 난의 향기를 모른다. 자줏빛이 감도는 갈색의 꽃대, 줄무늬가 섬세한 꽃받침, 역시 자줏빛 점이 찍힌 노르스름한 꽃잎…. 하지만 향기는 보이지 않는다. 금화산이 향기가 있다는 말에 나는 놀랐다. 처음 꽃을 피웠을 때부터 향이 없는 줄 알았다. 꽃내가 궁금해 맡아 봤지만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 난의 향기를 못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난을 잘 안다는 사람에게 듣자니, 나 같은 사람이 백 명 가운데 한두 명은 될 거라고 한다. 어쨌거나 우리 집에서는 나만 못 맡는다. 혹시 그 향이 성별을 가리나 하고 친구들을 불렀더니 다들 잘 맡는다. 나 혼자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냄새가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어린 시절, 보리밥이 우르르 끓기만 해도 그 냄새로 밥 위에 감자가 얹힌 걸 눈치 챘고, 군불아궁이에 넣은 장작이 소나무인지 참나무인지 잠결에도 알 수 있었다. 장에 갔다 온 어머니의 보따리에 든 새 고무신 냄새, 옷자락에 묻어온 바람 냄새…. 그리고 꽃내음, 아린 듯 은은한 진달래부터 달콤한 찔레꽃과 아까시꽃, 쌉쌀한 들국화의 향기를 나는 잘 알고 있다.

향기를 모르는 채 모양과 빛깔만으로 그 꽃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얼굴과 목소리를 안다고 그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눈앞의 꽃 향을 모르는 건 가까운 이의 속을 모르는 것만큼이나 안타깝다. 안타까워 그 곁을 서성거린다. 손부채질로 가만가만 숨결을 끌어당겨 보고, 너무 다가섰나 싶어 한 걸음 물러나기도 한다. 순한 비누로 씻고 맨 얼굴로 가까이 가 한껏 숨을 들이마신다. 그래도 향은 잡히지 않는다. 답답해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저 향기롭다거나 오묘하다는 답이 돌아오고, 나는 더 애가 탄다.

어느 날, 유난히 일찍 잠을 깬 새벽, 무심코 창가에 서는 순간 무엇인가 나를 스쳤다. 금화산이었다. 어머니가 쓰시던 분 냄새 같기도 하고 봄날의 풀냄새 같기도 했다. 향기라기보다 그냥 느낌이었다. 너무 짧아 꿈결 같았다. 맡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아무래도 마음으로 맡은 듯했다.

금화산은 정말 마음으로 만나야 하는가. 그 난이 그토록 내게 냉정한 것은 못난 내 마음에 대한 나무람인가. 후각의 한 쪽이 닫힌 대신 마음의 문을 더 열라는 뜻인가. 나를 멍하니 창가에 세워둔 채 금화산은 또 다시 멀어져갔다.

이화련(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