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 융합강의’ 선봬는 조병호 목사·홍순화 교수

입력 2011-03-10 20:34


조병호 목사 “역사와 지리 알면 말씀이 한눈에 쏙∼”

홍순화 교수 “성경속 時·空 융합되면 현재와 미래가”


‘통 신학자’ 조병호 목사와 ‘성지 박사’ 홍순화 서울장신대 교수가 21∼23일 경기도 가평 성경통독원에서 성경통독과 성서지리가 융합된 새로운 강의 방식을 선보인다. 이들은 성경의 전체 흐름을 12개의 사건으로 나누고 시간(역사)과 공간(지리) 이야기로 풀어나갈 예정이다. 9일 조 목사와 홍 교수로부터 성경통독과 성서지리 연구의 통합이 성경 이해에 어떠한 도움을 주는지, 한국교회와 정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역사와 지리가 만나면 성경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가.

△조병호 목사=성경통독의 원칙은 성경을 부분이 아닌 전체로, 역사 순으로 읽어나가며 하나님의 마음을 읽자는 것이다. 성서지리 연구는 성경 인물들이 살았던 공간으로 되돌아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이끌어내 성경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물처럼 흐르는 역사가 성지라는 공간 그릇에 담기면 하나님의 뜻과 세계 경영원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성경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개인 신앙의 강화로 이어지게 된다.

△홍순화 교수=두 가지가 융합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그때(then), 그곳(there)에서부터 지금(now), 이곳(here)으로 변환시킨다. 즉, 성경 내용이 과거에 머물지 않게 된다. 하나님 마음을 눈으로 읽고 머리로 깨닫고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인간의 제한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성경을 통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조 목사=모세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전체를 전제하고 신명기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언급했다. 에스라, 느헤미야 때도 이전의 모든 책을 통독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예수님도 율법과 예언서 전체를 활용해 복음을 전하셨다. 성경 66권을 한 권으로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경에는 다양한 문학적 장르와 주제들이 담겨 있지만 전체가 일치성과 완결성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성경을 통독하면 ‘예수님의 통 미니스트리(Jesus Tong Ministry)’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을 통해 민족, 국가, 성전, 십자가, 부활이라는 명사적 틀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예수님의 동사적 콘텐츠, 즉 먹이시고(feeding) 고치시고(healing) 가르치시고(teaching) 기도하시고(praying) 용서하신 것(forgiving)도 알 수 있다.

-성지를 한두 번 다녀온다고 지리를 잘 알 수 있는 것은 아닌데.

△홍 교수=그렇다. 성경 시대와 현대에 대한 전체적 조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리비아의 경우 성경에 여러 차례 다르게 언급돼 있다. 리비아(개역한글판 단 11:43, 개역개정판 대하 12:3), 리비야(개역·개정 행 2:10), 훕(개역 대하 12:3), 뿔(개역·개정 사 66:19) 룹(개역·개정 대하 16:8) 붓(개역·개정 겔 27:10, 30:5, 38:5) 루빔(개역·개정 나 3:9) 등이다. 룹과 붓, 루빔은 리비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성경 지명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으면 우왕좌왕하게 된다. 성경에는 1300여개의 지명 기록이 있다. 또 많은 ‘동명이지’(이름은 갖지만 다른 장소)가 나온다. 베들레헴도 두 곳(삿 12:10, 마 2:1)이나 언급돼 있다.

-요즘 교회가 정치에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조 목사=성경 역사를 보면 언제나 부족함이 있었다.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인간의 부족함이 전제된 뒤 우리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기여할지 고민해야 한다. 인간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우리 또한 자신을 고치려고 애써야 한다. 고친다는 것은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리를 가르쳐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좀 더 귀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용서받고 용서하는 열정을 배워야 한다.

-주심교회 당회장이기도 한 홍 교수는 예장 통합에서 노회장도 역임했다. 기독교인들은 교회(교단) 정치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홍 교수=자리에 연연하는 게 문제다. 교회 정치가 바로 되려면 지도자들부터 성경 원리로 되돌아가고 섬김을 실천해야 한다. 노회장이나 총회장은 영어로 사회자의 뜻인 ‘Moderator’다. 그러나 우리는 ‘우두머리’라는 대표자 ‘President’로 오해하고 있다. 교회 정치는 질서와 화해를 위한 것이다. 지나치게 상대방을 정죄하고 잘잘못을 가리는 건 문제 해결을 오히려 어렵게 한다. 교회 안의 문제를 세상법의 잣대로 해결하려 해도 또 다른 갈등을 일으킨다. 교회법은 신앙과 사랑에 근거한 최소한의 규제이지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 정치에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