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어떤 꿈을 꿔야 할까

입력 2011-03-10 14:45


시편 126편 1∼6절

시편 126편에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성전에 예배하러 갈 때 부르는 노래와는 다릅니다. 이 노래는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먼 여행을 출발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부른 노래입니다. 더 자세히 보면 1∼3절은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찬양이고, 4∼6절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삶을 인도하실 것에 대한 확신을 고백하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이미 그리고 아직’이라고 하는 이중구조를 형성함으로써 시편 120∼122편과 유사한 패턴을 보여줍니다.

시편 126편은 또한 남은 자들의 노래입니다. 남은 자들이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남겨두신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과 똑같이 타락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어느 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남은 인생을 타는 목마름으로 살았던 자들입니다.

본문이 왜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과 앞으로 역사하실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흐르고 있는 기본적인 사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약속과 성취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셨고 우리들은 미래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약속을 믿고 오늘을 인내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편 126편의 시대적 배경은 에스라 시대입니다. 이 시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이후입니다. 저자는 자신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해 포로생활과 예루살렘을 향한 먼 여행과정을 되돌아보니 꿈만 같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들이 찬양 내용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들에게 큰일을 행하셨도다.”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란 버티는 것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서는 인내라고 표현합니다. 믿음, 그것은 버티는 것입니다.

4∼6절은 아직 바벨론에서 돌아오지 못한 자들을 위한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 노래가 그들을 위한 노래라고 한다면 이미 예루살렘에 도착한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또 무엇입니까. 자신들을 향한 격려의 의미도 있었을 것입니다. 남은 자들은 바벨론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귀환한 이후 무너진 성을 짓기 위해 100여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리로다.”(5∼6절) 씨를 뿌리는데 왜 우나요. 여기에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의 눈물이 헛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우느냐입니다.

시편 126편의 배경은 예루살렘에 도착해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기뻐한 후, 현실 앞에서 좌절할 때였습니다. 바로 그때 이들은 좌절의 눈물 대신 미래를 희망하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 남은 자들입니다. 만약 울어야 한다면 무엇 때문에 울어야 할까요. 이 시대를 아파하는 하나님의 마음 때문에, 이 질곡의 역사 가운데 누구를 보내야 하겠는데 보낼 사람이 없어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지고 다른 사람들이 고통 받고 아파하는 것 때문에, 이 땅에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울어야 하지 않을까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통 사람을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분이심을 기억합시다. 그 하나님을 믿으며 울며 씨를 뿌려봅시다.

라영환 목사 꿈누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