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기자되다] 신용욱 경남과학기술대 교수가 본 ‘지방대 출신의 서울살이’
입력 2011-03-10 17:56
中企냐 公試<(공무원시험)냐, 강요 당하는 미래
새 학기다. 학생들을 맞이하는 교수들은 요즘 ‘학생상담’ 때마다 같은 질문을 받는다. “교수님, 취업을 위해 뭘 준비하면 될까요?” 며칠 전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작년 여름 상담하러 찾아온 한 학생이 떠올랐다. 제대 후 복학한 그는 경찰공무원이 되고 싶은데 친구들이 많아 공부에 방해가 되니 좋은 방법이 없겠느냐고 상담을 청했다. “우리 학교(경남과학기술대)가 있는 경남 진주에는 경찰공무원 준비 학원이 없다,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서 공부하고 싶다, 휴학을 허락해 달라”는 요지였다. 학생의 뜻이 간절하고 진실성이 보여 휴학 처리에 동의했다.
노량진은 이렇게 공부를 중단하거나 마친 지방대 출신 젊은이들이 공무원 등 각종 임용시험을 준비하러 전국에서 찾아오는 곳이다. 학원가는 가파른 언덕길을 걸어 올라야 닿을 수 있었다. 7일 찾아간 그 길은 분명 대도시 골목인데 강원도 어느 탄광촌에 들어서듯 가슴이 먹먹해졌다. 골목의 비좁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여기는 지방의 수많은 ‘대졸자’들이 젊음의 마지막 승부를 걸어보려 찾아오는, 그들의 이름이 ‘대졸자’에서 ‘공시생’(공무원시험준비생)으로 바뀌는 공간이다.
꽃샘추위에도 체육복 차림의 젊은이들이 겨드랑이에 책을 한 권씩 끼고 바삐 지나간다. 길을 따라 걷다가 교회 종탑 아래 멈춰 섰다. 강남교회. 노량진 수험생을 위한 다양한 지원활동으로 유명하다. 이 지역에서 다년간 수험생을 돌봐온 하용욱 목사를 만났다.
노량진, 30대의 마지막 선택
“노량진은 청년들이 나이가 들어도 일 대신 공부를 해야 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번듯한 일자리가 부족하니 공무원이 되려 하고, 그러려면 취직을 미룬 채 공부를 해야 하고, 그렇다고 시험에 붙는다는 보장도 없죠. 나이가 차도 시골로 내려가지 않아요. 30대인데도 노량진을 인생의 마지막 선택으로 생각하고 온 젊은이들이 많습니다.”(하 목사)
하 목사는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들이 보통 2∼3년 공부하다 10명 중 6, 7명은 귀향하고, 2, 3명은 서울에 남아 비정규직이 된다고 했다. 이들이 공무원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장래에 대한 안정감이라고 한다. 그는 이 ‘안정감’에 대해 “한국사회가 만들어낸 하나의 환상인 듯하다”고 말했다.
강남교회는 10여년째 공시생들에게 무료로 아침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후원금과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마련되는 밥을 매일 200여명이 먹는다. 수험생들에게 멘토 역할을 해주는 전담 교역자가 있고, 50석 규모의 독서실도 무료로 개방한다. 독서실 앞에서 지방 출신 공시생 3명을 만났다.
세무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홍대성(29)씨는 공부보다 공부 외적인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생활비를 보내주시는 부모님께 미안하고,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막연함이 가장 큰 공포지요. 갈수록 체력도 바닥나는 것 같고… 오래 앉아 있다 보니 요통이 심해요. 소화도 안 되고 변비도 생기고요.”
강경태(29)씨는 9급 토목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1년 정도 취업 준비를 하다가 흔히 말하는 ‘스펙’ 때문에 포기했다. 공무원으로 방향을 튼 지 1년반쯤 된다. “제 스펙으로는 좋은 기업에 취직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렇다고 중소기업에 가자니 미래가 불안정한 것 같고요. 공무원은 안정적이란 생각에 다들 선호하는 거죠.”
김영자(28)씨는 “고향의 가족, 친척들은 공무원이 쉽게 되는 줄 안다. 서울보다는 지방, 특히 시골일수록 그런 생각이 더 강한 것 같다. 그런 시선이 더 신경 쓰인다”고 말했다. 그는 9급 일반 행정직 공무원 시험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
이들은 노량진 생활에 비교적 익숙해진 축에 든다. 한 고시학원 앞에서 만난 김성구(27)씨는 체육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러 지난달 전북 익산에서 상경했다. 그는 서울생활을 가계부로 설명했다. 한 달에 밥값 15만원, 공부하고 잠자는 고시원비 35만원에 학원비가 100만원 정도 든다. 과목당 2개월에 30만원이나 하는 수강료를 내면서 인터넷강의 대신 노량진 학원을 찾는 이유는 이곳에 모이는 시험 정보 때문이다. 그래도 “(임용시험) 재수는 기본”이라고 했다.
노량진 학원가를 빠져나오는데 대로변에 줄지어 있는 포장마차가 보였다. 10여년 전 민법 강의를 들으러 이곳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한정된 용돈으로 오랜 시간 배부를 간식을 찾다가 기름에 튀긴 ‘못난이 핫도그’를 깨물며 민법 책을 넘기곤 했다. 콩나물시루에 물 붓듯 외워도 외워도 머리에 남지 않는 한계를 절감하던 시절,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었다.
지방대 출신의 서울 직장인
서울 서초동 지하철 교대역 인근에서 경남과학기술대 졸업생들을 만나 저녁을 사줬다. 서울에서 직장을 구한 세 명이 참석했다. 해병대 간 현빈 얘기부터 꺼내며 발랄하게 웃는 지연이(28)는 서울의 대학원에 진학했다가 한 컨설팅회사에서 3개월째 인턴으로 근무 중이었다. 서울생활이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서울에서 대학 나온 친구들과 가장 비교되는 건 인맥이에요. 지방대 출신은 인맥이 없어요. 회사에서 끌어줄 선배도 없고, 무엇보다 가까이서 방향을 제시해줄 멘토가 없어서 힘들어요. 속마음을 털어낼 만큼 친구를 깊이 사귀기도 어렵고, 그러다 보니 저절로 같은 지역 출신끼리 더 자주 모이는 것 같아요. 저희도 ‘한번 보자’ 할 때 동원할 멤버가 이 세 명이죠.”
도현이(29)는 직원 40여명의 프로그램 개발업체에 입사한 지 3년 됐다. 갑(甲)이 프로젝트를 발주하는 대기업이라면 도현이 회사는 을(乙)과 병(丙)을 거쳐 정(丁)에 해당하는 업체다. 연봉은 2200만원 정도. 진주에서 같은 일을 한다면 1600만원쯤 받을 거라고 한다. 서울생활 경비를 생각하면 수입 차이는 크지 않지만 중요한 건 진주엔 그런 연봉에도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6년째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주말마다 진주에 간다. “여자친구는 (진주에) 내려와서 결혼하자고 하는데, 진주에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 2년쯤 뒤로 (결혼을) 미뤘어요.”
도현이와 같이 근무하던 영범이(30)는 올 들어 웹 개발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소속 부서가 없어졌다. 또 4개월간 임금의 85%만 받아야 했고 출장비 등 지원도 끊겼다. 수입이 크게 줄어든 상황이 장기화될 것 같아 1∼2개월 쉴 작정하고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영범이는 “서울에 살려면 집세를 내야 하는데 월급이 제때 나오지 않아 카드빚 연체가 늘고 생활이 곤란해졌다”는 말을 오래전 일인 양 담담하게 말했다. 고향으로 내려간 회사 동료들도 있는데 자기는 계속 서울에 남아 있을 계획이라고 한다.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있냐고 물었다.
“진로를 정할 때 줏대 없이 우왕좌왕하는 게 가장 위험하다.”
“지방에선 진로에 관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은데 마음만 먹으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이를 테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같은 다양한 채널을 활용할 수 있다.”
“지방대라는 인식을 버리고 자신의 경쟁력을 찾아 특화해야 한다. 그것이 영어가 됐든, 기술이 됐든, 리더십이 됐든.”
많은 말이 나왔다.
공시생과 중소기업
지방대학을 비슷한 시기에 졸업하고 각기 다른 선택을 한 두 그룹, 공시생과 중소기업 취업자들을 관찰했다. 지방대 학생들에게 ‘스펙’은 커다란 벽이다. 이 벽을 넘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노량진으로 가는 것이다. 아니면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감수하고 중소기업에 취업해야 한다.
수백 대 1의 경쟁률이 가로막고 있는 공무원 시험과 언제 임금이 체불될지 몰라 불안한 회사. 이 갈림길에서 고민하다 한쪽을 택한 지방대 출신 젊은이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양쪽 모두 서울에 와 있다는 것이다. 대학을 다닌 지역에 괜찮은 일자리가 있고 취업 지원 인프라가 갖춰졌다면 굳이 상경하지 않아도 됐을 이들을 현실은 서울로 떠밀고 있었다.
1박2일 기자로 변신해 취재한 내용은 여기까지다. 이제 지방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제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대학 졸업 후 진로를 어떻게 선택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전이고, 이 꿈을 계속 간직할 의지가 필요하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노량진 고시생의 눈에서 비전을 봤고,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이들의 말에선 의지를 읽었다. 현실에 맞설 꿈과 의지가 있다면 공무원이든, 중소기업 직원이든 청춘을 바칠 가치가 있다.
신용욱 교수 ywsynn@gn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