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교수되다] 김지방 기자가 본 ‘지방대의 현실과 고민’

입력 2011-03-10 10:30


학문+지역+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지방대 홀로서기 꿈꾸다

교문 앞에 내걸린 현수막이 퍼더더덕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 바람이 차가웠다. 지난 7일 월요일 오전 8시40분, 경남 진주시 칠암동 150번지 경남과학기술대학. 이틀간의 ‘교수’ 역할을 위해 캠퍼스에 발을 디뎠다. 인적 없는 교정에 방송부가 틀어주는 댄스음악이 요란했다. 아직 학생들이 등교하기엔 이른 시각이다.

생명자원과학대학 306호 앞에 섰다. 문에는 ‘신용욱’이란 명패가 ‘농학·한약자원학부 학부장실’이란 문구와 함께 붙어 있다. 신 교수는 학부장이었던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따뜻한 스팀 온기. 전공서적이 빼곡한 책장. 음, 좋아. 이게 바로 교수란 직업의 아늑함이야.

오늘 수업은 오후 6시30분 ‘영농설계’. 경남과기대는 야간학부 과정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대학 중 하나다. 그때까진 놀면 되는 건가? 과연 좋군!

한껏 기지개를 켜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다. 전중창 기획처장이 기다린다고 했다. 지난해 새로 지은 본관에서 신임교수(?)를 맞은 전 처장은 “요즘 지방대는 정원 채우기도 어려운데, 우리 학교는 무난히 다 모집했다”고 소개했다. 국립이어서 학비가 비교적 저렴하고 산학연계에 특화된 덕일 것이다.

경남과기대를 잠깐 소개해야겠다. 1910년 공립진주실업학교로 문을 열었다. 광복 이후 진주공립농림학교, 진주산업대학교 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성장했다. 올해부터 일반대로 전환하며 경남과기대가 됐다. 10번째 이름이다.

이날 오후 내가 수행해야 할 미션은 도라지 농가 방문이라고 한다. 교수가 웬 농가 방문?

신 교수는 농학·한약자원학부의 특화작목산학협력사업단(이 지역 도라지의 품질관리와 유통을 돕는다)과 동의보감촌사업단(경남 산청의 약초를 상품화해 유통시킨다)에 참여하고 있다.

도라지사업단 차량을 타고 30분쯤 달렸다. 산청군 산청읍 민종석(71)씨 농가. 황량한 도라지밭에서 굴착기가 윙윙 움직이고 있었다. 한참 뒤에야 한 노인이 굴착기에서 내려왔다. 민씨였다.

“누가 각중에(갑자기) 도라지 40㎏을 보내 달라케가 내가 쪼매 바빠가꼬. 미안시럽네.”

-교수님들 조언이 농사에 도움이 되나요?

“솔직카이 말하믄 실제 농사짓는 거는 우리가 쪼매 낫재. 머…교수님들 학식도 중요하지만 대민관계가 중요한기라. 신 교수가 약초는 잘 알더라꼬. 인기가 있는 편이제.”

도라지사업단과 연계된 농가는 모두 98곳이다. 1년에 약 300회 방문 컨설팅을 한다. 다음 방문지는 식품공장이었다. 약초가 들어간 퓨전 떡을 동의보감촌사업단에 납품하는 곳. 여기는 너무 바빠서 얘기 나눌 시간도 없었다.

학교로 돌아오니 어느새 강의 시간이 됐다. 오, 이런! 강의 준비를 하나도 못했다. 이런저런 내용을 메모해 강의실을 찾아갔다. 야간 과정 학생은 대부분 50대다. 준비한 내용을 다 쏟아내고 시계를 보니, 겨우 20분 지났다. 3시간짜리 수업인데. 식은땀이 났다. 이럴 땐 질문을 던지는 수밖에 없다.

-어머님 아버님들은 왜 대학에 오셨는지 궁금하네요. 얘기 좀 해주세요.

“나는 죽어도 대학 한번 가보고 죽고 싶더라꼬. 올해 4학년이 됐는데 너∼무 잘했다 싶어예. 공부하면서 농사지으니까 풀 한포기도 허투루 안 보이데예. 재미있쓰예.”(강영애·56)

요즘 젊은이들은 취업 안돼 고민하는데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물었다. 일제히 “다시 젊어진다면 무슨 고생이든 못할게 머 있노!” 하고 합창이라도 하듯 외친다.

8일 화요일 아침. 날씨가 좀 더 따뜻해졌다. 오전 10시부터 ‘한약 용어’ 강의가 있다. 이번엔 잘 해보려고 새벽까지 프레젠테이션 자료도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농업이 더 중요해질 거라고 합니다. 많은 선진국이 식량자급률을 100% 이상 유지하면서 농업을 엄청 챙깁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벼농사는 지을수록 손해인 게 현실입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강의 소감을 보내 달라고 했더니, 이창열이란 학생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농업을 너무 천시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저도 농업을 배우지만 거부감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농촌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수업시간과 수업 뒤 비는 시간, 학생들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진로를 물었다. 대부분 공무원이나 기업체 취직을 바라고 있었다. 진주에 남고 싶다는 학생은 절반쯤. 교육인적자원부가 밝힌 지방대 졸업생 취업률은 51%(4대 보험 가입 직장 기준). 경남과기대는 67.7%라고 한다.

-지방대 다녀서 손해라고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인터넷 덕에 취업정보는 별 차이 없이 접하지만 시험준비 요령이나 직장생활 경험담 같은 구체적인 얘기는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없어서 조금 답답해요.”(정다현·08학번)

-88만원 세대, 지방대의 설움, 이런 얘기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뭐, 저는 잘될 거라 생각해요.”(이한가람·06학번)

학교 기숙사 건물에 있는 도라지사업단과 동의보감촌사업단 사무실에 들렀다. 학교와 농촌이 손잡고 수익성 있는 기업을 만들어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학교에는 산학협력 중심대학 육성사업단 아래 여러 ‘기업’이 입주해 있다. 학생들에겐 실습장이면서 취업의 기회다.

신 교수는 지방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SNS로 서울의 광고 전문가, 디자인 전문가에게 직접 조언을 얻는다고 했다. 지난 설에 소셜커머스 사이트에서 한방 퓨전 떡을 팔았다. 학교까지 와서 수령토록 했는데도 700상자 가까이 팔려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동의보감촌사업단 마케팅사업팀장인 박상혁 교수(전자상거래·무역학과)는 “지역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SNS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와 신 교수는 이번 학기 ‘영농 설계’와 ‘전자상거래’ 과목을 함께 진행하며 농업과 SNS를 접목하는 실험을 한다. 박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은 주변에 관련 업체가 많지만, 여기선 스스로 이런 시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유명 인사에게 강연을 요청해도 진주까지 잘 오시지 않아요.”

지방은 발전 속도가 느리고 외부 자극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박 교수는 반대로 느린 속도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본 처방은 지역사회가 공동체성을 회복하면서 자생력 있는 생활 생태계를 만들고, 지역 대학도 거기에 섞이는 겁니다. 20년이 걸리든 30년이 걸리든 그 길로 가야 해요.”

경남과기대에서 이틀간 본 것이 지방대의 현실을 대표할 순 없다. 국립대여서 여건이 훨씬 나은 편일 수도 있다. 지방대 교수들 사이에선 “3년 뒤엔 천안 이남의 대학은 다 문 닫고, 5년 뒤엔 수원 이북의 학교만 남을 것”이란 괴담도 있다. 충청권의 한 사립대 교수를 9일 밤 따로 만나 물었다.

-지방 대학이 그렇게 어려운가.

“우리 학교에 오는 학생들은 내신 4∼5등급, 딱 대한민국 중간이다. 그런데 공대 입학생들이 근의 공식을 모른다. 경제학과 학생들 토익(990점 만점) 점수가 신발사이즈(200점대)다. 솔직히 대학 교육을 하기 힘든 수준이다.”

-그럼 교수는 뭘 하는가.

“지방 사립대 교수의 가장 큰 임무가 뭔지 아나? 아이들이 학교 그만두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학문보다 스킨십이 더 중요하다.”

-고교에 가서 학생 모집해 오는 일도 큰 임무라던데.

“맞다. 진학담당 교사를 늘 만나는건 기본이다. 촌지를 뿌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진로 지도는 어떻게 하나.

“제자 중에 제법 애를 쓰기에 책도 사주며 격려해서 토익 945점을 받은 아이가 있다. 그런데 기업체 서류전형에서 다 떨어진다. 자격증 공부하라고 조언하긴 했는데….”

-지방대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맞다. 수도권의 지명도 낮은 대학보다는 그나마 우리 학교가 나은 편이다. 저마다 살아남으려 애쓴다. 수시로 학과 이름 바꾸고 커리큘럼을 뜯어고친다. 하지만 탈출구가 없다.”

-그럼 당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은 불만이 많겠다.

“아니다. 불이익을 당해도 그냥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럼 내가 기사를 어떻게 써야 할까.

“그래도 희망을 줘야지. 어렵다, 어렵다 하면 그게 오히려 편견이 될 수 있다. 이런 답답한 얘기는 뒤에 살짝만 덧붙이면서.”

진주=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