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성기철] 김태호씨가 출마해선 안 되는 이유
입력 2011-03-09 19:16
“국무총리 후보 사퇴한 지 얼마 됐다고 연고도 없는 곳에 눈독 들이나”
박희태 국회의장이 2009년 10·28 경남 양산 재선거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반드시 권토중래(捲土重來)하겠습니다. 큰 양산을 만들기 위해선 큰 정치인이 가야 하지 않나 생각해서 출사표를 던지게 되었습니다.”
박 의장은 양산에 아무런 연고도 없다. 13대 총선 때 고향인 경남 남해·하동 선거구에서 처음 배지를 단 후 그곳에서 내리 다섯 번이나 당선됐다. 양산과 남해·하동은 같은 경남이지만 끝에서 끝이어서 주민들의 교류가 거의 없다. 그런 낯선 곳에 왜 출마했을까. 중앙정치를 아는 사람들은 다들 ‘국회의장이 되기 위해’라고 짐작을 했다. 박 의장은 2008년 총선 때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와신상담 끝에 한나라당 대표가 됐으며, 그것을 무기삼아 재선거 공천을 따냈다.
양산에서 당선된 그는 이듬해 국회의장직을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양산 시민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자기들이 뽑은 의원이 국회 수장이 되었으니 자랑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딴 지역 사람이어서 마음속 깊이 기쁘지만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언제 떠날지 모를 사람이기에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박 의장은 올해 73세로, 내년 19대 총선 때는 74세가 된다. 고령인데다 국회의장까지 지냈으니 정계에서 은퇴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남아있더라도 양산에 다시 출마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럴 경우 큰 양산을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은 공약(空約)이 될 수밖에 없다. 양산 시민들이 안쓰러워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박 의장 케이스를 길게 언급한 것은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4·27 경남 김해을 보궐선거 출마를 적극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라서다. 김 전 지사는 경남 거창 출신이다. 그곳에서 군수를 지냈고, 그걸 발판으로 경남지사가 됐으며 한때 대권주자 반열에까지 올랐었다. 만약 그가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김해을 보선에 나설 경우 ‘타 지역 출신 거물 출마’라는 점에서 박 의장과 닮은꼴이 된다. 김해 역시 같은 경남이지만 거창과는 교류가 거의 없는 지역이다.
김 전 지사는 지난 주말 중국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하면서 기자들에게 “일을 하고 싶어 미치겠다”고 말했다. 강한 출마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김 전 지사의 보선 출마는 문제가 있다. 박희태 의장도 정치적 재기를 목적으로 남의 지역에서 배지를 달았는데, 나라고 못할 것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불과 6개월 반 전 도덕성 시비에 휘말려 국무총리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전 태광실업 회장 박연차씨를 알게 된 시기에 대해 여러 차례 말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2007년 이전에는 박씨를 알지 못했다고 했다가 2006년 10월 골프 회동한 사실이 드러났으며, 같은 해 2월 둘이 함께 찍은 사진까지 공개되면서 졸지에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다.
40대 젊은 총리의 탄생을 기대하던 국민들에게는 큰 실망이었다. 도지사로서 지역 기업인을 알고 지내는 것이 죄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찌됐건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한 건 용서받기 어렵다. 그의 ‘죄과’는 공부하겠다고 중국에 간 지 5개월도 안 돼 돌아와 국민의 대표가 되겠다고 나서도 될 만큼 가볍지 않다. 일을 하고 싶어 미치겠다지만 당분간은 수양(修養) 삼아 공부를 좀 더 하는 게 순서다.
김 전 지사의 후안무치도 밉상이지만 그를 공천하려는 한나라당의 무 개념도 문제다. 김해을은 최철국 전 민주당 의원이 박연차씨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의원직을 박탈당해 보선을 치르는 곳이다. 박연차 관련 거짓말로 낙마한 사람을 ‘박연차 보선’에 투입하겠다는 집권당의 강심장이 놀랍다. 수도권과 달리 지역민의 대표성을 많이 따지는 시골 선거구에 타 지역 사람을 수혈하려는 고집도 이해하기 어렵다. 박희태 의장으로 재미를 봤기 때문인가. 지명도 높은 후보를 내세워 당선만 시키면 그만이라는 발상은 김해시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성기철 카피리더 kcsung@kmib.co.kr